21세기 병원(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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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2001년 어느 날 지방공무원 P씨(45)가 시골종합병원 문을 들어섰다.
병원에 가기 전 이미 집에서 컴퓨터로 병원 컴퓨터를 불러내 예약해둔 상황이다. 의무기록부도 필요 없이 지정된 진찰실에 들어가 보니 의사·간호사가 벌써 대기하고 있다.
플라스틱으로 된 진찰권 카드를 간호사에게 내밀었더니 컴퓨터 디스켓 구멍에 집어넣는다. 지난번 입원했을 당시의 기록내용이 전부 화면에 나타난다. 자신의 모든 진료기록이 카드 한 장에 수록되어 있다.
의사는 그 자리에서 CT촬영사진을 컴퓨터 영상처리기로 불러내 서울에 있는 간암 전문병원 방사선과 전문의와 위성통신으로 토의하더니 진단을 확정했다.
P씨의 병이 간암 재발이지만 20세기와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 완치를 장담할 수 있다고 위로해 주면서 20분이나 간암의경과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준다. 환자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의사의 진지함이 매우 믿음직스럽다.
P씨는 당일로 입원, 병실에 가보니 병실인지 안방인지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늑한 가정과 같은 분위기다.
의료보험이 대부분의 입원비를 보상해주니 걱정이 없다. 환자 가족은 없고 친절한 간호사가 기다리고 있다. 주사기로오른 팔에서 피를 빼는 것이 아니고 귀밑에서 얻은 피 한 방울로 암의 최종진단을 한다고 한다. 수술대신 새로 개발한 유전자 치료를 한다고 한다. 암 유전자를 다른 유전자로 바꿔치기 해 암을 제거하는 방법이다.
옆방 신장암환자의 치료법은 또 다르다. 암세포가 만들어내는 특수항체를 증폭시켜 여기에 항암제를 꼬리표처럼 붙여 주사하면 이 항암제는 암 조직만 선택, 암세포를 죽여 5일만에 완치, 퇴원시킨다는 계획이다.
함께 간 조카도 외래에서 진찰을 받았는데 역시 편리하기 짝이 없었다. 40분 동안 전문의사의 세밀한 진찰을 받고 난 후 약국에 가보니 벌써 약이 대기하고 있다. 의사가 컴퓨터에 처방을 입력하자 즉각 약국 컴퓨터로 연결되어 약 봉투에 이름·복용방법이 찍혀 나오고 약제사가 처방전에 따라 조제를 끝내고 기다리고 있다.
「2시간 대기, 2분 진찰, 2시간 약 대기」의 20세기 대학병원과는 판이 한 진풍경이다. 김용일<서울대 병원 제2진료부원장·병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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