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금배지(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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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세계 의회의 어머니임을 자임하는 영국의사당에는 간판이 없다. 오랜 전통속에 다져진 권위를 모든 국민이 인정하니 따로 간판을 세운다면 오히려 사족이 되었을지 모른다.
하원을 일컫는 House of Commons는 그대로 번역하면 「서민의 집」이다. 안에 들어가보면 그 이름에 실감이 간다. 왕궁처럼 화려하게 치장된 옆의 귀족원에 비해 「서민의 집」은 초라하기 짝이 없다. 의자는 모두 벤치고,명패는 물론 없다. 서민의 대의원들에 걸맞은(?) 쑥색이 방분위기를 더욱 소박하게 만든다.
거기다가 방은 지나칠 정도로 비좁다. 내각 불신임같은 중요안건이 토의될 때면 벤치에 끼여앉고도 모자라 벤치 사이의 계단은 물론 회의실 주변 맨바닥에 의원들이 주저앉는다.
우리 여의도 의사당에 비할수조차 없는 초라한 모습이다. 이걸 바꿀 기회가 한번 있었다. 2차대전중 독일 폭탄이 하원의사당을 파괴했을 때였다. 하원의사당을 다시 세울때 최소한 모든 의원들이 앉을 의자라도 들어설 수 있는 규모로 넓히자는 의견이 나왔다. 그러나 대다수 의원들은 옛날 규모 그대로 복원하자는 쪽으로 기울었다. 이유는 하원이 서로 얼굴을 맞대고 국사를 토론하는 장으로 유지되려면 그 이상 의사당이 넓어져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영국 하원의 서민적 풍모는 이밖에도 많다. 의원들은 대부분 자가운전차로 등원하고 더러는 자전거로 등원한다. 비서는 서너명의 의원당 한명 꼴로 배당되어 있다. 웨스트민스터 안에는 생맥주를 마실 수 있는 선술집도 네군데나 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이들은 금배지를 달고 다니지 않는다. 외모에서나 생활수준에 있어서 서민의 한사람이란 점을 강조하고 있는 이들에게 금배지란 상상하기 어려운 허세로 받아들여질게 뻔하다.
우리 의원님들이 새 배지를 달게될 것이란다. 지방의회 의원들 배지와 비슷해 구별이 잘 안돼서란다. 글쎄,지방의원들이 또 새배지를 모방해 달면 어쩔텐가. 그렇게해서 시­도,구­군의회와 국회가 단계마다 배지모방과 구별화 경쟁을 벌인다면 그 꼴이 어떻게 될까. 차라리 이 기회에 일본 빼고는 남들 다 안하는 금배지제를 없애는게 어떻까.<강두성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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