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혼들 외침」듣고만 있을 순 없다"|「삿포로 향토 찾는 모임」이시다 대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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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말로만 전해 듣던 감옥노동의 잔학 현장이 훗카이도 탄광지역이 아니라 바로 삿포로시내 한복판에도 있었다고 확인한 순간 사실 큰 충격을 받았어요.』
82년 이후 11년간 집념을 갖고 조선인 강제징용자의 노역현장을 찾아내 이곳에 위령 비를 세우자는 운동을 펴고 있는「삿포로 향토를 찾는 모임」의 이시다 구니오(60·석전국부)대표는 이 운동의 목적이『진실을 찾고 인간존엄성을 회복하자는 데 있다』고 밝혔다.
삿포로 시내 중앙부를 관통하는 호헤이 천의 물을 10㎞ 가량 끌어들여 삿포로 시민에게 전기·물을 공급하는 모이와 댐 발전소의 굵은 도수 관을 가리키면서 저기가 바로 생매장이 저질러진 곳이라고 밝히는 이시다씨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다.
이 운동이 활성화된 것은 60년 전 공사현장에서 일하던 결정적 증인 우에다(74)씨가 86년1월 나타나면서부터. 그는 과거의 얘기를 왜 새삼스럽게 들춰내 떠드느냐는 지역 유지들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문어 방(감옥노동)에서 일한 조선노동자(3백여 명으로 추정)들이『아이고, 아이고』소리치며 산채로 묻혀 죽어 갔다고 전하면서 생매장된 사람이 일본인을 합쳐 60명은 넘을 거라고 증언한 것이다.
이시다씨는 이에 힘입어 87년 7월 위령비 건립추진 회를 결성, 5백만 엔을 거둬 모이와 산 정상에 조선인 문어 방 노동자 위령비를 세우기로 결의했다.
그에 따르면 건립취지 문에는 변호사·교사·아이누·재일 한국인·조선인·역사학자·향토사가·시민단체대표 등 각계 66명이 서명했으며 1월 현재 3백50만 엔이 걷혀 금년 중으로 현장부근의 토지를 매입할 예정이다.
이시다씨는 매년 한차례 열고 있는 공개강좌를 지난해에는 보다 많은 시민에게 알리자는 뜻에서「지금도 들리는 모이와의 외침」이라는 연극공연으로 대치했었다며『의외로 엄청난 시민의 반응을 보고 크게 고무됐다』고 감격해 했다.
공연 관람 후 한 고등학생이『조선인의 고통과 눈물을 이제야 알게 됐다. 국제화시대에 이 같은 민족차별이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된다』는 감상을 보내 왔다며 편지를 펼쳐 보였다.
가능하면 이 같은 일본인의 마음이 전해질 수 있도록 한국 내에서도 공연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다고 포부를 밝히는 이시다씨의 현재 직업은 삿포로시 광양소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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