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올림픽 유치 실패에 서울 땅 부자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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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초 안명순(55·서울)씨는 강원도 평창군 도암면 알펜시아리조트 주변을 답사하는 ‘토지 투어’에 참가했다. 착공식(10월 27일)을 마친 뒤여서 공사 흔적이 역력했다. 도로 안쪽 땅이 3.3㎡(1평)에 40만원에 달했다. 안씨는 올림픽이 열리면 대박이 터질 것이라는 중개업자의 설명을 듣고 투어 참가자들과 함께 ‘공투’(공동투자) 를 감행했다. 토지거래허가구역이 아니어서 땅을 쉽게 살 수 있었다.

안씨처럼 평창 땅을 사들인 외지인들은 유치 실패로 대박을 꿈꾸기는커녕 폭락을 걱정하는 처지가 됐다. 평창 일대 토지시장이 꽁꽁 얼어붙었다. 매수 문의가 뚝 끊기고 부동산중개업소들은 모진 한파를 각오하는 분위기다.

◇거래 늘려=건설교통부에 따르면 2000년 5년부터 2007년 5월까지 7년여간 거래된 평창 땅은 9만9423필지다. 2001년 6160필지에 불과했던 거래량이 2005년 2만619필지, 지난해 2만3271필지, 올해(1~5월)만 1만980필지로 급증했다.

7년여간 외지인(강원도 이외 거주자)이 사들인 땅은 전체 거래 토지의 73.4%(7만7814필지)다. 외지인 거래 면적은 같은 기간 165k㎡(5000만평), 전체의 66.3%로 상대적으로 작은 단위로 거래됐다. 기획부동산들이 작게 쪼개 파는 땅은 주로 외지인들이 사들인 것으로 분석된다.

외지인 매입 비율은 필지 기준으로 2001년 46.6%에서 2003년 72.7%, 2006년 83%, 올해 86.6%(9505필지)로 계속 높아졌다. 강원도내 다른 시·군 거주자가 매입한 것까지 포함하면 외지인 비율은 올해 90%를 웃돈다. 올해 강원도 전체에서 거래된 땅 가운데 외지인이 매입한 비율 57.7%(3만6408필지)와 비교하면 평창군 일대에 외지인들이 얼마나 몰렸는지 짐작할 수 있다. 서울 사람이 올해 매입한 강원도 18개 시·군의 땅 중 28.3%는 평창 땅이었다.
서울 거주자가 매입한 땅은 2001년 전체 거래필지의 20.6%에서 지난해 43.3%, 그리고 올해 49.1%(5392필지)로 증가했다. 강원도 전체로는 서울 거주자 비율이 2001년 17%, 지난해 27.6%, 올해 30.2%로 해마다 늘긴 했으나 평창군 일대에 비해 크게 낮은 수준이다. 올해만 놓고 보면 평창지역 땅을 구입한 사람의 절반은 서울 사람인 셈이다. 현지인 명의로 사들이거나 위장 전입하는 경우까지 감안하면 외지인이나 서울 거주자가 매입한 토지 비율은 이보다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

◇개발업체 타격 클 듯=평창군 관계자는 “알펜시아리조트 주변 4곳에서 지구단위계획(관광휴양시설) 제안이 들어왔으나 이번 유치 실패가 사업 추진에 변수로 작용할 것 같다”고 말했다. 개발업체들이 계획 자체를 보류하거나 수정할 가능성이 크고, 군 입장에서도 일부 제안은 수용하기 어려울지 모른다는 얘기다. 평창군은 최근 알펜시아리조트 외곽 300미터 이내 지역에 대해 경관 보호와 난개발 방지 차원에서 3만㎡이하의 개발행위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 이런 땅을 사들인 개발업체나 외지인들은 돈이 묶여 고생할 것으로 보인다. 허가를 받아 분양을 하고 있는 N사 등도 추가 분양은 가을 이후로 미루기로 했다.

강원도개발공사가 추진하는 알펜시아리조트 사업도 불확실성이 커졌다. 공사측은 유치전이 활발히 전개된 3월 말부터 골프빌리지(400세대) 분양에 나섰으나 아직 분양률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공사 관계자는 “올림픽을 유치했다면 접근성이 개선될 수 있었으나 유치 실패로 그러한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며 “그러나 경쟁력과 수익성이 있는 사업이므로 계속 추진한다는 방침”이라고 밝혔다.

원주~강릉간 전철 사업은 착공이 지연되고 국고 대신 민자 유치를 통해 복선이 아닌 단선으로 추진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관측된다. 대진대 김동선 교수는 “유치 실패로 사업성이 더욱 떨어지겠지만 동서 교통축을 개선하기 위해 원주~강릉간 전철을 놓고 착공을 앞둔 성남~여주간 전철을 연장해 원주까지 연결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외지인 발길 줄 듯=유치 실패에 따른 타격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부동산전문가들도 적지 않다. 부동산114 김희선 전무는 “한번의 실패를 경험한 지역이기 때문에 무턱대고 투자한 사람들은 그렇게 많지 않다”며 “대규모 리조트 개발사업이나 관광객 추이 등의 자료를 바탕으로 투자한 사람들은 크게 불안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올림픽이 아니더라도 평창군 대화면 신리 일대의 서울대 바이오첨단연구단지 추진 등 재료들이 남아있긴 하다. 부동산퍼스트 곽창석 전무는 “평창 일대는 관광수요가 풍부하고 주 5일제 이후 관심도 높아지고 있는 지역”이라고 말했다. 2003년 유치 실패 이후 1~2년 뒤 땅값이 다시 오르는 것을 학습한 투자자들은 폭락 가능성을 배제하고 있다.

부동산전문가들은 땅값 조정이 짧게는 대선까지, 길게는 2~3년 후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RE멤버스 고종완 대표는 “2~3년 간 서서히 조정국면에 진입할 것이라고 보지만 당장의 급격한 하락은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펜션 등 실수요를 목적으로 투자한 사람들은 올림픽 유치 재도전의 희망이 살아있어 매물을 쉽게 내놓지 못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고 대표는 “오히려 장기투자나 실수요자에게는 이번이 기회가 될 수 있으므로 조정기에 급매물을 노려볼 수 있다”고 말했다.

가격 조정폭은 최고 30% 정도로 예상되고 있다. 현도컨설팅 임달호 대표는 “기대감이 무너지면서 평창군 지역은 20~30%정도의 가격 조정이 일어날 수 있고, 봉평군에 밀집한 펜션단지들도 타격이 클 것”이라고 밝혔다. 해밀컨설팅 황용천 대표는 “개인투자자의 경우 팔려고 해도 살 사람이 없기 때문에 섣불리 팔려고는 않겠지만 사업자의 경우 자금을 지급보증이나 담보의 형태로 조달해 투자한 것이어서 일부는 곤경에 처할 수 있다”고 말했다.

허귀식 기자 · 이명섭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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