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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 중심의 교회 '무소유 신앙' 실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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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지난해 12월 31일 오후 11시30분 서울 독산동 금천여성인력개발센터 3층엔 30여명의 기독교 신자가 모였다. 2004년 새해를 맞아 송구영신의 예배를 드렸다. 남들처럼 번듯한 교회는 아니지만 이들에게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곳이다. 이름하여 언덕교회(www.unduk.or.kr). 일요일이나 이날처럼 특별한 날에는 20여평의 작은 공간이 복음을 전파하는 교회로 사용된다. 박득훈 목사의 설교가 시작됐다.

"지난해의 모든 것을 잊어버립시다. 자랑거리도, 업적도 잊어야 합니다. 그래야 발전할 수 있습니다. 소외된 이웃과 지역사회를 돌보는 일에 더 많이 힘을 쏟읍시다."

참석자의 얼굴에 밝은 미소가 번졌다. 두 시간여의 예배를 마친 그들은 떡을 함께 먹으며 신년 덕담을 나눴다. 한국 기독교의 개혁 운동에도 앞장설 것을 다짐했다.

언덕교회는 지난해 4월 말 창립된 신생 교회다. 한국 기독교의 개혁을 바라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여 작은 공동체를 형성했다. 목사.장로 등의 일방적 목회를 지양하고, 평신도를 중심으로 민주적.개방적 교회를 추구하고 있다. 교수.사업가.언론인.직장인.의사 등 구성원도 다양하다.

김종희 집사는 "신자 대부분이 이전에 다니던 교회에 만족을 느끼지 못한 사람들"이라며 "보다 건강한 교회를 만들어보자는 뜻에서 결집했다"고 말했다. 일부 성직자의 전횡, 투명하지 않은 재정, 지나친 죄의식 고취 등에 숨이 막힌 사람들이 모였다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교회성장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지난 10년 간 한국 기독교인 열명 중 여덟명은 교회를 옮긴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언덕교회는 '소유하는 교회'를 거부한다. 그래서 예배용 공간을 임대해 쓰고 있다. 대신 이들은 교회의 민주적 의사결정, 이웃에 대한 봉사 등에 힘을 쏟는다. 교회 재정을 인터넷에 공개해 누구나 열람할 수 있으며, 또 재정의 33%를 사회 복지에 쓰고 있다. 최근 교회 규약을 보강해 목사.장로.권사 등 모든 직분자의 임기를 3년으로 못박았다. 재임하려면 교인 총회에서 3분의2 지지를 받아야 한다.

박목사는 "평신도의 설교 기회를 보장하는 등 한국 교회에서 가장 모범적이라 할 수 있는 정관을 만들었다"며 "최고 의결기구인 운영위원회에서 목사가 갖는 표도 한 표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언덕교회는 이웃과 함께 하는 교회를 지향한다. 지난해 7월부터 매달 한차례 외로운 노인들이 모여 사는 안양 '평강의 집'을 찾고 있으며, 지난 성탄절 전야엔 동두촌 기지촌 여성을 돕는 '다비다의 집'을 방문했다. 앞으로 교회 인근의 독거노인 등 빈곤층 지원을 확대할 계획이다.

예배도 독특하다. 어른.어린이의 구별을 두지 않는다. 어른들은 어린이 설교를 함께 듣고, 나중에 어른 설교를 또 다시 듣는다. 그 사이 아이들 대상의 별도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가족이 함께 어울리는 교회를 지향하는 것이다.

언덕교회는 뜻을 같이 하는 교회들과 활발한 네트워크를 구축할 예정이다. 지난해 10월 개혁 지향적 교회들이 만들었던 교회개혁연대를 주도하고 있다. 물신주의로 치닫는 사회, 극심한 피로 현상을 보이고 있는 종교, 이런 세태에서 그들의 작은 몸짓이 어떤 반향을 끌어낼지…. 박목사는 "바른 길은 언제나 좁고 힘들다. 그러나 그 길을 걸을 때 하나님의 축복과 위로가 있다"고 대답했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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