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로봇이야기

힘센 노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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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한 달 전 어머니의 88세 생신을 축하하는 미수(米壽)연을 치렀다. 조촐하지만 가슴 뿌듯한 자리였다. 필자의 오랜 친구들도 많이 참석했다. 아들 친구들이 이제는 건장한 중년이 돼 무대에 일렬로 서니 어머니도 든든하셨을 것 같다. 무대 중앙에 앉은 어머니는 무척 작아 보였다. 원래 큰 키였는데 나이가 들면서 키도 작아지고 힘도 빠져 가벼운 물건도 들기 힘든 것 같았다.

 나이 들어 힘이 없는 노인들, 또는 장애인들이 무거운 물건을 가볍게 들고 활기차게 걷도록 도와 주는 로봇 기술이 있다. 일상생활에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바로 “동력옷”이라고 하는 기술이다. 최근 한국에서도 이 기술들을 개발하고 있다. ‘장착형’ , 또는 ‘부축형’ 보행 보조 기기라고 하는 장치다. 보행이 어려운 사람이 걸을 때 다리의 움직임을 감지하여 전동 모터가 부착된 튼튼한 로봇 다리가 보행을 도우면서 힘을 받쳐 주는 기술이다. 지난해 특허상을 받았고, 실용성도 있어 보인다. 일본도 비슷한 보행 보조 장치를 개발했다. 도쿄대학에서는 ‘근육작업복’ 이라 하여 공기압을 이용해 팔의 힘을 받쳐 주는 장치를 선 보였다.

 이 장치에는 모두 비슷한 기술을 사용하고 있다. 로봇을 움직이는 방식이 두 가지가 있는데, 로봇 스스로 지능을 갖고 움직이거나 외부에서 로봇을 조종하는 방식이다. 후자는 로봇에서 일정 거리 떨어져서 조종한다고 하여 ‘원격 제어’라고 부른다. 앞에 열거한 장치 모두 외부, 즉 사람의 다리나 팔의 움직임에 의해 로봇의 다리와 팔이 움직이므로 이에 해당된다.

 이 기술에는 동일한 문제점이 있다. 얼마나 효율적으로 사람의 동작을 인식해 로봇을 사람과 한몸처럼 신속하게 움직이게 할 것인가다. 이를 ‘시간 지연’ 이라 하는데 초기 인터넷 전화가 성공하지 못한 이유도 이것이다. 통화가 상대방에게 즉각 들리지 않고 몇 초가 지난 다음에 들리니 마음이 급하면 서로 통화가 꼬인다. 인터넷 채팅도 문자 입력 속도가 서로 다르면 대화가 엉키게 된다. 이 문제가 가장 극명하게 나타나는 곳은 바로 먼 우주, 구체적인 예로 화성 탐사 로봇을 들 수 있다. 지구에서는 화성 탐사 로봇의 영상을 보고 명령을 내린다. 그런데 명령을 실은 전파는 화성까지 빛의 속도로 날아가도 거의 20분이 걸린다. 빛은 1초에 지구 7바퀴 반을 도니 대단히 먼 거리다. 명령이 날아가는 20분 동안 로봇이 어떻게 되든 지구에선 알 수도 없고 무엇을 할 수도 없다. 그래서 우주 로봇은 스스로 움직이는 지능을 갖춰야만 하고 지구에서는 가끔 상황을 보며 감독을 한다.

 원격제어에는 ‘주인-노예’ 방식을 쓰기도 한다. 말 그대로 주인의 움직임을 로봇이 그대로 따라하는 개념이다. 사람은 자유롭게 움직이면 되고 센서가 그 움직임을 인식해 그대로 로봇 프로그램으로 ‘다운로드’ 시키면 로봇은 그 움직임을 흉내낸다. 휴머노이드 로봇의 사람 같은 움직임이나 TV에 종종 나오는 어린이 캐릭터의 날렵한 움직임도 같은 기술을 사용하고 있다. 필자도 1990년대 후반 이 기술에 몰두했고, 원격조종 로봇 국가 지정 연구실로도 선정됐다. 실험실에서 공기압을 사용한 ‘동력작업복’을 만들어 무거운 물양동이도 들고 쇠뭉치도 들었다.

 이 기술이 최근 다양한 방식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아직 사람 팔이나 다리에 착용하기에는 커서 부자연스러워 보이는 게 해결해야 할 문제다. 하지만 기술은 항상 발전하며, 특히 수요가 많으면 가속되게 마련이다. 언젠가 가벼운 운동복 같은 옷을 걸친 노인이 무거운 바구니를 가볍게 들고 즐겁게 걷는 모습을 볼 것이다. 이런 장치가 ‘효도복’이라 불리면서 인기 상품으로 등장할 때가 조만간 올 것이다.

박종오 전남대 교수·기계시스템공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