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나간 교육열… 상아탑 먹칠(대입부정 이럴수가: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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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돈이면 뭐라도” 사회규범 실종/해마다 재발… 더 지능화/학생·부모·교사·대학 「검은 양심」 결탁
소문과 추측으로 나돌던 대학입시 대리시험·점수조작 부정이 사실로 드러나 우리사회 「총체적 부패」의 또 한단면이 백일하에 노출됐다.
대학 총장의 친인척·대학의 고위간부·교사·검찰간부의 아들까지 낀 유명대학생·부유층 학부모 등이 한통속이 돼 저지른 범죄는 과연 우리사회가 이렇게 가도 괜찮은지 심각한 자문을 불러오는 충격이다.
입시부정은 그동안에도 심심찮게 있어왔고 91년에도 건국대·성균관대의 대규모 부정입학사건이 적발됐었다. 그러나 건대·성대부정은 미등록자분에 대한 것이어서 「사학의 어려운 재정형편 때문」이란 일말의 동정이 없지 않았다.
이번 한양대·광운대사건은 입시자체에 대한 조직적·범죄적 부정이어서 공정한 경쟁이라는 교육평가,나아가 사회규범을 근본부터 무너뜨렸다.
『1억원이면 대학에 갈 수 있다』는 시중의 농담같은 풍설이 풍설만이 아닌 우리 대학의 현실임을 확인시켜주고 있는 것이다.
「진리의 상아탑」이어야할 대학이 누가 더 많은 돈을 가지고,누가 더 교묘한 방법으로 완벽한 범죄를 저지를 것인가를 확인하는 경연장으로 바뀌어버리는 것이 아닌지 우려마저 일게 한다.
입시부정은 갈수록 수법이 범죄화하고 거래액수는 「인플레」돼 천만원대에서 억원대로 급상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총장·이사장이 46명의 성적을 컴퓨터로 조작한 89년 동국대사건에 이어 90년 한성대에서는 재단이사 등이 1인당 3천만∼4천만원을 받고 94명을 부정입학시킨 사건이 적발되기도 했다.
또 91년에는 서울대 음대 등에서 실기 심사위원들이 결탁한 수험생의 채점을 올려주는 사건도 드러났고 지난해 청주대·부산공업대 등에서 교수가 자기대학에 응시한 딸의 답안지를 고친 사실도 적발됐다.
이번 대입부정 수사에서 입시부정이 어느 한해,어느 학교에서의 단발사건이 아니라 지속적·조직적으로 있어왔다는 심증이 거의 사실로 확인되고 있다.
경찰조사에서 광운대 부정관련 고교교사인 이두산씨는 『매년 입시때마다 10∼20명씩 부정입학이 이뤄져 왔다』고 진술하고 있다.
『내자식만 잘되면 법이고,윤리고 알바 없다』는 학부모의 극단 이기심과 탐욕,황금만능주의 앞에서 대학총장 일가족과 교무처장 등 보직교수,현직교사마저 놀아났다.
관련 고교교사는 『어떻게 해서든 내 아이를 합격시켜달라는 학부모들 등쌀에 어쩔 수 없이 부정입학이라도 시켜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고개를 떨구었고 학부모는 『아들이 전자공학박사가 되고 싶다고 해 소원을 들어주려 했다』고 했다.
문제는 단순히 대학부정입학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그같은 부정입학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있는 우리 대학의 현실이다. 92년 광운대에 부정입학한 유모군(21·전자공학 1)은 학력고사 성적이 전문대학에도 들어갈 수 없는 수준인 1백28점이었으나 대학측에서 성적을 2백83점으로 조작,합격됐다. 상식대로라면 유군은 도저히 대학생활을 해나가기 어렵다. 그러나 유군은 낙제는 커녕 아무 이상없이 2학년 진급을 앞두고 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조건 대학만 들어가면 상급학년으로의 진학은 저절로 보장되고 졸업후에도 실력은 어떻든간에 학벌만 있으면 무조건 취직이 되는 것이 바로 우리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아무나 터무니없는 실력으로도 무조건 대학에 기를 쓰고 들어가려고 하는 것엔 다 이유가 있다.
이제 우리대학은 기로에 서있다. 언제까지 이같은 악순환을 계속해야만 하는가,언제까지 우리의 대학이 복마전으로 변해가는걸 보고만 있어야 하는가.
대학은 우리사회의 미래이자 마지막 보루이어야 한다. 더이상 「1억원이면…」 따위의 말로 우리의 대학을 욕보일 수는 없는 것이다.<김종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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