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합격생 부모 누구인가/김석현 사회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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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후기대에 이어 전기대에서도 대리시험 부정이 드러났다. 부정합격생의 부모는 하나같이 부유층이다. 서울의 한 구의회 의원도 끼여있다.
구살림을 정직하게 감시하고 챙겨야할 사람이 협잡꾼들에게 1억원을 주고 딸의 대학합격증을 사려고한 사실에 경악과 분노를 느낀다.
구의원 말고도 대리입시 학부모중에는 기업체 사장,모진흥공단 간부도 끼여있고 검찰 고위간부의 자제도 연루됐다.
각 단체의 지도층으로서 많은 사람들을 이끌고 겉으로는 늘 명분을 주장할 것이 뻔한 이들이 수신제가의 모범은 커녕 최소한의 도덕심마저 차버린 추한 모습을 그대로 드러냈다.
『3수하는 자식을 둔 부모심정을 아느냐』고 말한 학부모도 있었다지만 「자식을 위해」 돈을 주고 대학합격증까지도 사려는 이들의 마비된 양심이 바로 우리사회 모든 병의 근원임에 틀림없다. 이들뿐 아니라 쇠고랑을 찬 대리수험대학생들도 동정의 대상은 될 수 없긴 마찬가지다.
대리수험대학생들은 『그게 이토록 큰 죄가 되나요』라며 아직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거나 『수렁같은 돈유혹에 그만…』하며 후회하고 있으나 대학초년생의 젊은 패기와 양심을 돈뭉치와 바꾼 짓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 될 수 없다.
이번 사건은 제대로 수사가 진행되면 부정입시의 사례와 관련자들이 속속 드러날 전망이다. 소위 어떤 「사회 지도층 인사」가,얼마나 딱한 대학생이,혹은 대학관계자가 또 철장신세를 지게될는지 모를 일이다. 「붙고 보자」와 「돈만 받으면 그만」이라는 마비된 양심,병든 세태를 얼마나 더 확인시켜줄지 관심아닌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형편이다.
우리나라의 교육열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서도 매우 높아 한편으론 사회발전의 원동력으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같은 교육열은 사회 지도층·대학생 등이 관련된 이번 사건에서처럼 불법·타락된 양심에 의해 비뚤어져 오히려 사회병리현상을 가중시키는 요인이 되는 것이 아닌지 심각히 되돌아볼 일이다.
얼마전 마약복용 양상으로까지 치달은 오렌지족 사건에서도 나타났듯 이 사회 중·상류층이 실종된 건전한 상식을 되찾으려는 노력없이는 올바른 공동체의 근간을 세울 수 없다는 것을 각성해야 할 시점인 것 같다. 총체적 위기극복을 위해 총체적 개혁이 있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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