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의 두 목표 동시 추구(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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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지금 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딜레마에 빠져있는 나라로는 이라크·쿠바와 함께 북한이 꼽힌다. 세나라 모두 외교적 고립과 경제적 빈곤속에서 갈피를 못잡고 있다. 현실적으로는 국가체제나 정책노선의 근본적인 전환이 요구되고 있음에도 카리스마적인 지배체제의 유지를 위해 결단을 못내리고 있다. 그때문에 정권은 유지되지만 국가발전이나 국민이익은 추진되기 어렵게 되어있다.
그중에서도 북한의 상황은 심각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경제정책의 실패,과중한 군사비 부담이 겹친데다 과거의 배후지원 동맹국이었던 소련(러시아)과 중국이 변했고 미국·일본으로부터의 외교공세,한국으로부터의 개방압력이 가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북한이 선택해야할 길은 대외개방을 통해 경제협력을 얻어 경제를 회생시키는 것뿐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국가의 경제지원을 받으려면 먼저 국가적인 신뢰를 얻어야 한다. 호전적 태도를 버리고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일원으로서 타국과 평화적으로 공존·협력하겠다는 명확한 자세를 보여야 한다.
이런 태세만 갖춘다면 북한은 한국이나 일본,나아가 미국으로부터도 경제발전을 위한 자본·기술·물자를 제공받을 수 있는 유리한 입장에 있다.
그러나 지금은 북한이 체제유지에 급급한 나머지 대외적으로 군사적인 긴장상태를 풀지 않은채 경제적 지원만 얻으려는데 문제가 있다. 북한은 남북간에 합의된 핵상호사찰을 거부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사찰마저 억제하고 있다. 북은 그들의 핵사찰거부로 야기된 팀스피리트훈련 재개를 구실로 남북대화마저 중단시켰다.
지난 12월부터 재미교포들에게 발급하던 방북비자도 중지했다. 여기에 미국이 가만히 있을리가 없다. 클린턴정부가 최근 김용순 등 북한 외교관들의 입국비자를 거부한건 북한에 대한 새 미 행정부의 강경입장 표시로 봐야 한다.
그럼에도 북한은 근본적인 자세수정없이 경제협력을 얻기에만 급급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에 대해 수교와 경협을 위해 저자세를 취하는가 하면 한국에 대해서는 제4차 7개년계획(94∼2000년) 참여와 물자난 해소를 위한 남북간 교역증대를 희망해왔다. 북한이 대외적으로 경제를 개방하고 협력을 요구하는 것은 올바른 선택이다. 그러나 먼저 핵불신을 해소하지 않고 경협만 추구하는건 불가능하다. 우선 공격적인 군비태세를 버리고 세계와 함께 평화와 번영을 추구하겠다는 공존공영의 노선을 행동으로 보이는게 중요하다.
세계는 결코 어수룩하지 않다. 북한은 이중자세에서 벗어나 핵사찰부터 받아야 한다. 군비경쟁의 시대는 지나갔다. 이제 「군축경쟁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북한이 과거의 냉전적 미망에서 벗어나 진정한 세계조류에 합류할 때 북의 살 길은 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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