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과기행정 「조화형」이 바람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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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안정 속의 개혁과 신한국창조를 다짐하는 문민정부의 출범이 초읽기에 들어섰다. 특히 과학기술 혁신과 강력한 기술드라이브정책 구현을 기대하고 있는 1백만 과학기술인들은 어떤 개혁정책이 나올까 하는 기대 속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수준은 기술선진 7개국에 비하면 상당한 거리가 있다. 국가전체의 연구개발비·연구인력·지원체제 등으로 미뤄볼 때 정부의 강력한 기술드라이브정책을 이끌어 갈 합리적인 과학기술 행정체제의 구축이 요망되고 있다. 현 정부에는 대통령의 자문에 응하는 과학기술자문회의가 상설기구로 있고, 내각 차원으로는 종합 과학기술 심의회를 두어 범부처적 종합 조정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또 과기처는 총괄조정위원회를 운영하는 등 외견상 조정기능을 가지고 있으나 실질적인 종합조정 역할은 못하고 있다. 이의 근본 원인 중 하나는 과기처에 연구비의 예산배분권이 없기 때문이다. 심의회에서 결정된 연구과제도 예산당국으로 보내져 다시 예산배정심의를 하고 있다.
과학기술행정체제의 모형은 4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는 연구개발활동의 주관부서가 따로 없이 관련각 부처가 독립적으로 운영하는 「분산형」이다. 미국의 체제가 분산형이나 연구개발의 중복 등으로 비효율적이어서 미국에서도 비판의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둘째는 연구개발을 관련부처가 분산 수행하되 위원회 형태의 조정기구를 설치 운영하는「조정형」모델로 60년대 이전의 유럽제국의 형태였으며 조정기능의 실효성 결여로 대부분 실패했다.
셋째 유형은 「집중형」이다. 이것은 프랑스의 형태로 하나의 핵심부처에서 연구개발(R&D)예산 및 사업통제권을 보유하는 막강한 조직형태이지만 특정부처의 비대화로 관료화의 비난이 높다.
넷째는 「조화형」으로 여기에서는 관련 각부처가 R&D 업무를 수행하지만 과학기술전담부처를 두어 구심체적 역할과 함께 각 부처에 관련되는 공통적 대형과제와 핵심 전략분야를 담당토록 하고 있다. 대표적인 조화형의 나라는 독일로 연구기술성이 이 업무를 수행, 전후독일을 과학기술대국으로 재건하는데 견인차적 역할을 했다. 우리나라는 조직상으로는 집중형이었으나 차츰 변질돼 조정형으로 변천됐다고 평가할 수 있다. 경제를 회생시키고 앞으로 10년 안에 기술선진국의 벽을 뛰어넘을 수 있는 가장 적합한 형태는 넷째 유형안 「조화형」이다. R&D의 예산배분권을 과학기술전담부처에 부여, 과기정책 기획과 집행관리를 효율적으로 하도록 체제를 개편, 기술 선진국의 꿈을 앞당기는 슬기를 보여주어야 한다. 【박승덕<한국표준과학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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