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4일 서울 대학로 쇳대 박물관에서 공연 보고회를 가졌다. ‘그리움 내려놓고…’라는 보고회 타이틀처럼 장씨는 미국 땅에서 구성진 소리로 그리움을 마음껏 풀고 왔다고 했다. 지난 한달간 뉴욕·시카고·워싱턴·LA 등 미국 4개 도시에서 열린 공연은 성공적이었다. 현지 프로모터 없이 자체 기획한 공연임에도 1만명에 육박하는 관객을 모았다. 뉴욕타임스는 “피를 토하듯 톡 쏘는 음색이 감동적이었다”고 보도했다. 메릴랜드의 아시아 아트&컬처센터, 뉴욕시티센터 등에서 초청공연 요청도 들어왔다. 공연을 본 일본 공연기획자는 즉석에서 내년 일본투어 공연을 제의했다.
-미국 공연을 마친 소감은.
“떠날 때는 된장 하나 어깨에 짊어지고 태평양을 건너가는 심경이었다. 교포 관객들이 내 노래를 숨소리도 죽여가며 듣는 걸 보고 ‘됐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첫번째 공연을 했던 뉴욕에서는 공연장 스탭들이 무척 고자세였다. 그래도 우리는 공연을 잘 치러냈다. 그랬더니 스탭들 태도가 180도 바뀌더라. 그 뒤부터 공연이 수월하게 풀렸다. 사실 적자도 봤지만, 세계 어느 곳에 가든지 최상의 공연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장사익 음악의 어떤 부분이 관객을 감동시켰다고 보나.
“블루스, 재즈, 힙합, 알앤비 등 미국 음악은 이성적이고 화려하다. 우리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 따라하는 것은 모방일 뿐이다. 그들의 음악에는 없는 톡 쏘는 맛을 살렸다. 고추와 마늘의 매운 맛 같은 음악이다. 미국의 유명 재즈뮤지션이 내 노래를 듣더니 ‘당신 음악이 블루스 같다’고 했다. 언어는 달라도 음악은 통하는 것이다. 느리지만 액센트와 인간미가 있는 음악이 우리의 경쟁력이고 자부심이다.”
-교포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교포 관객들이 모두 ‘난 40년 살았소’ ‘난 30년이요’하면서 미국에서 살아온 세월을 숫자로 말하더라. ‘40년 이민생활하면서 가슴에 맺힌 것을 한 방에 털어냈다’는 말을 들을 때 가슴이 뿌듯했다. ‘한국에는 관심없던 애들이 공연을 본 뒤 밤새도록 한국 문화에 대해 얘기하더라’며 고마워하는 가장들도 많았다.”
-향후 계획은.
“샌프란시스코·애틀랜타·메릴랜드 등에서 공연 요청이 들어왔다. 숙고해서 결정할 생각이다. 내년 일본 투어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
글·사진=정현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