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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시 시가총액 1000조원 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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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시가총액 1000조원 시대가 열렸다. 4일 거래소 시장(909조7826억원)과 코스닥(104조3741억원)을 합해 시가총액이 1014조1567억원을 기록했다.

서울 증시는 4월 24일 처음으로 시가총액이 국내총생산(GDP, 2006년 기준 848조원) 규모를 추월하는 등 거침없이 내달리고 있다. 증시 상승의 주역은 조선.철강.화학 등 전통적인 굴뚝 산업들이다. 탄탄한 실적을 바탕으로 이들 업종의 주가 재평가 작업이 활발해지고 있다. 코스닥 거품 때처럼 막연히 미래성장성만 내다보고 급등락을 반복했던 과거 증시와는 다른 모습이다.

증시의 몸집이 불어나면서 체질도 개선되고 있다. 한화증권 이종우 리서치센터장은 "시중 뭉칫돈이 증시로 몰리고 기관들도 펀드를 앞세워 주식을 적극 사들이면서 예상보다 빨리 '시총 1000조원 시대'가 열렸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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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달리는 증시=시총 1000조원 시대 개막에는 적립식 펀드 열풍으로 상징되는 간접투자 확산이 일등 공신이다. 부동산 시장이 한풀 꺾이면서 풍부한 유동성이 증시로 쏠리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최근 시가총액은 매달 100조원씩 불어나고 있다. 한국투자증권 김학균 선임 연구원은 "과거에 볼 수 없던 뭉칫돈이 증시에 유입되면서 수급사정이 몰라보게 좋아졌다"며 "압도적인 매수세에 힘입어 주가 상승세도 가파르다"고 말했다. 코스피 지수는 올 상반기에 20.82% 올라 세계 6위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서울 증시는 덩치에서 세계 10위를 넘보는 수준이다. 한국은 현재 세계거래소연맹(WFE) 소속 51개 시장 가운데 16위다. 올 하반기까지 상승 추세가 이어지면 인도.이탈리아는 물론 덴마크.핀란드.스웨덴 증시를 합친 OMX시장(세계 13위, 시총 1295조9840억원)도 따라잡을 수 있다는 낙관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대세는 상승" vs "잠복 변수 많다"=증시 상승을 떠받치는 가장 큰 기둥은 경기 회복 기대감이다. 경기 호조→기업 실적 개선→시중 자금의 증시 유입 확대→주가 상승의 '선순환 고리'가 더욱 단단해 질 것이란 관측이 순매수를 유도하고 있다.

유리자산운용 차문현 대표는 "자본시장 통합법을 계기로 고객의 입맛에 맞는 다양한 투자상품이 쏟아질 것"이라며 "연기금을 비롯한 큰손들의 주식 투자 비중이 늘어나는 것도 대세 상승에 청신호"라고 분석했다. 과거 예금 위주의 자산운용이 급속히 투자 중심으로 옮겨가는 흐름도 증시에 유리한 요소로 꼽힌다.

시총 1000조 시대를 위협하는 복병도 곳곳에 잠복해 있다. 무엇보다 단기 급등한 주가가 가장 큰 부담이다. 여기에다 유가 상승과 원화 환율 하락도 심상치 않다.

특히 원화의 '나홀로 강세'는 수출 의존도가 높은 국내 기업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기업 실적 악화로 자칫 증시가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길게 보면 국내 기업의 성장성도 의문이다. 대기업들이 사내 유보금만 늘리고 신규 투자는 꺼려 성장잠재력이 눈에 띄게 훼손되고 있다. 상당수의 주식투자 자금이 해외를 기웃거리는 것도 변수다. 올 상반기 국내 펀드는 주춤거리고 해외 펀드 투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일부에선 성장에 치중해온 서울 증시가 이제 성숙미를 갖출 때라는 지적이 나온다. 펀드 평가사 제로인의 최상길 상무는 "시가총액이 GDP 규모를 넘어서면 일단 선진형 증시로 봐야 한다"며 "그러나 펀드 시장을 자세히 살펴보면 단기 수익률만 좇아 옮겨다니는 현상은 여전하다"고 말했다. 증시로 쏠리는 자금 흐름이 주가가 하락할 경우 순식간에 탈출 러시로 반전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표재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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