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Blog] “영화발전기금 4000억 "어떻게 쓸거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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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얼마면 되겠니?” 드라마 ‘가을동화’에서 원빈의 대사로 유명해진 말이죠. 요즘 준비 중인 영화에 투자를 받지 못해 힘들어하는 영화인들을 보면, 호기롭게 이런 대사를 한번 읊어주고 싶은 기분이 들곤 합니다. 메인 투자가 정해져도 지난해 손실의 여파로, 부분 투자자들이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다고들 하거든요. 뭐, 물밑에서는 영화계에 이런저런 움직임이 많은 듯한데, 아직 이렇다할 굵직한 소식은 없는 상태입니다.

 새로운 돈이 전혀 안 보이는 것은 아닙니다. 1일부터 극장 관람료의 3%씩 부가금 징수를 시작한 영화발전기금이 한 예입니다. 7000원 관람료면 204원씩이라는군요. 이 204원은 극장과 투자·제작사가 나눠 부담하게 돼있습니다. 대략 2014년까지 7년쯤 모으면 2000억원이 된다고 하네요. 여기에 정부예산에서 2000억원을 보태 총 4000억원 규모의 기금을 조성한다는 계획입니다.

 아직 이 돈을 쓸 곳은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힌트는 있지요.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는 최근 기자간담회를 통해 1000억원의 신규 투자펀드를 조성할 구상을 밝혔습니다.

이 구상에 따르면 2008·2009년 예산에서 300억원씩 600억원을 종자돈으로 삼고, 기관투자가 등으로부터 400억원쯤을 유치해 1000억원을 만든다는 겁니다. 그리고 한국영화에 부분만 아니라 메인 투자까지도 하겠다는 겁니다. 그 대상은 기존에 메인 투자자 역할을 주로 해온 대기업 계열 배급사들의 영화가 아닌 작품들이 되겠지요.

 4000억원은 말할 것도 없고, 1000억원도 참 큰돈입니다. 현재 주요 투자배급사 한 곳이 연간 영화판에서 굴리는 돈이 1000억원 미만이거든요. 단순무식하게 비교하자면 영진위의 구상은 CJ엔터테인먼트·쇼박스·롯데의 3대 메이저 외에 제4의 메이저가 등장하는 효과가 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는 그야말로 구상, 즉 방안 중 하나입니다. 문화관광부·기획예산처 등 정부기관과 영화계까지 두루 논의를 거쳐야 하는 사안이지요. 아시다시피 영화발전기금에 대한 영화계 안팎의 반감은 만만치 않습니다. 당장 부가금을 내야 하는 극장 측은 물론이고, 관객들 역시 관람료 인상 요인이 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상태입니다. 영진위의 구상에 대해서도, 영화계 한편에서는 의견수렴 과정에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오기도 했습니다.
  어찌됐건 관련 법규의 개정으로 부가금 징수는 시작됐습니다. 논의의 초점이 한결 뚜렷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건 그래서입니다. 문화인 동시에 이윤을 추구하는 산업인 영화를 지원하는 데 민간과 정부가 두루 발을 담근 상태입니다.

드라마에서는 ‘얼마면 되겠니’로 족할지 몰라도, 현실에서는 ‘어떻게 쓸거니’가 훨씬 중요할 듯합니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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