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포럼] 잊지못할 새해 선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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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만약, 새해가 없다면?'

갑신년을 알리는 새 달력의 겉장을 떼어 내며 불쑥 든 생각이다. '일년, 열두달, 삼백예순다섯날을 헤아려 가르지 않고 연이어 살아간다면'하고 상상하자 나도 모르게 머리 끝이 뾰쪽 섰다. 들뜬 가슴으로 꿈꿔보는 새 날의 희망과 기대, 내 자신 혹은 여럿과 함께 실천을 다짐하는 많은 각오와 약속들이 아예 태어나지조차 못할 게 뻔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사는 것이 고단해도 새 달력을 걸고, 새 수첩을 마련하며 갖는 의욕은 항상 헌 달력과 묵은 수첩을 버리며 가지는 아쉬움을 앞서게 마련이다. 뿐인가. 제 살기에 바빠 안부조차 나누지 못하고 지나치기 일쑤인 지인들과 밀린 인사나마 챙길 수 있는 것도 새해 덕분이다.

요즘처럼 e-메일과 휴대전화가 설치는 세상에서 연하장이 없었던들 비록 서명뿐일망정 그 사람의 체취가 담긴 육필의 흔적을 더듬는 일이 가당키나 할 것인가. 더욱이 어떤 이들은 두어줄의 안부를 친히 곁들이기도 하고, 붓글씨로 새해 덕담을 적어 보내기까지 한다. 그러니 아무리 나이먹는 것이 무섭다 해도 새해의 존재란 역시 고마울 수밖에 없다.

지난 연말, 그리운 얼굴들을 떠올리며 반가운 마음으로 연하장들을 읽어 가다가 낯선 편지 한 통을 발견했다. 마산우체국 사서함을 주소로 한 발신인이 보낸 것이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연 봉투 안에는 붓글씨로 정성껏 쓴 '謹賀新年'(근하신년)이 적힌 한지가 한 장 들어 있었다. '정신적 난쟁이가 됐던 자신에게 마음 한 켠을 비우지 못한 것들까지 통찰하게 하고 내면 깊이 울려오는 소리에 귀 기울이게 해준 데 대해 이 해가 가기 전에 감사를 전하고 싶었다'는 글과 함께.

나는 오래도록 눈을 뗄 수 없었다. 발신인이 옥 담 안 구독자 838번이라는 서명 때문만은 아니었다. 편지 한 쪽에는 공들여 붙여놓은 단풍잎이 있었던 것이다. 책갈피에 눌린 흔적이 완연한 단풍잎 하나-. '체념의 사슬에 묶여 세상을 향한 원망과 한탄, 반목과 질시로 메말랐던 영혼'인 그가 옥 담 밖으로 보내준 새해 선물이었다.

이 나뭇잎은 어디에서 났을까. 바람결에 날아왔을까. 아니면 누군가로부터 얻은 것일까. 투명 테이프에 매달린 단풍잎을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잎을 따라 그려진 희미한 연필선을 발견했다. 행여 마른 잎이 부서질까봐 조심조심 밑그림을 그렸을 그의 애틋함과 온전한 모습으로 전해지기를 바랐을 그의 간절함에 코 끝이 찡해졌다.

나는 그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 알지 못한다. 그의 형량이 얼마인지도 모른다. 지금껏 옥 안에서 보낸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이 죄값으로 남아 있는지 아닌지조차 가늠하지 못한다. 다만 죄값으로 자유를 반납한 그에게 이 단풍잎은 친구가, 혹은 연인이 돼 푸념을 들어주고 원망의 손길을 달래며 그를 위안했을 것이라고 짐작할 뿐이다.

바깥 세상의 내음을 전해준 소중한 단풍잎을 다시 바깥 세상으로 돌려보낼 수 있을 만큼 그가 여유로워졌다는 것이 반갑다.

새해 아침이다. 옥 담 안 수형인들에게도, 담장 밖 사람들에게도 태양은 똑같이 떠올랐다. 새해가 허락한 꿈과 희망 또한 모두에게 골고루 주어졌다.

나는 바란다. 새 해가 838번에게 기쁨의 해가 되기를. 그래서 그가 '토막난 삶'에 대한 원망을 접고 세상과 화해를 시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인간에게 외투를 벗게 하는 것은 거센 바람이 아니라 따사로운 햇볕이듯, 진정으로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상처가 아니라 기쁨이기에.

홍은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