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소한인 수난에 관심갖자(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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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망국의 설움을 달래며 이국땅에서 힘겹게 살아온 우리 동포들이 연해주를 떠나 중앙아시아의 우즈베크,카자흐,타지크 등지로 강제이주해온지도 이미 60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민 3세가 된 지금에 와서 타지크의 내전으로 6천명의 한인동포가 피난을 가야했고 우즈베크 한인 19만명에게 현지 민족주의자들이 올해안에 떠나라는 통첩을 했다는 보도를 보면서 우리는 기가막히다는 느낌을 먼저 받는다.
물론 소련의 해체와 더불어 시작된 정치·경제·인종간의 갈등과 분열이라는 시대적 혼란상 속에서 이런 사정이 발생했다는 점을 감안하면서도 우리가 구소련속 한인들의 난민위기를 통분해 하는데는 다음 몇가지의 국민적 정서가 깔려있다.
첫째,갈등과 분열이라 해서 3세대를 살아온 땅에서 발을 붙일 수 없다면 이것은 소수민족에 대한 지나친 냉대라고 밖에 볼 수 없다. 특히 지난 37년 한인동포들에 대한 스탈린 정부의 강제이주 명령이 불법적 조치였음은 러시아정부가 인정하고 있는 형편이다. 옐친대통령도 이점에 대해 적절한 법적조처를 약속한바 있다. 그런데도 어째서 25만의 한인동포들이 또 다시 유랑의 길을 떠날 위기를 맞고 있는가.
둘째,우리는 어려운 경제여건에도 불구하고 독립국가연합에 30억달러의 경제협력을 약속했고 이미 14억7천만달러라는 돈이 지급된 형편이다. 동포들이 또 다시 삶의 본거지를 잃고 있는데도 이처럼 막대한 지원을 해야 하는가 하는 분노가 형성될 수 있다.
셋째,이미 우리는 로스앤젤레스의 흑인폭동을 겪으면서도 느낀바가 있었지만 어째서 이민간 우리 동포들은 본고장의 주민들과 원만한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느냐 하는 아쉬움이다. 억척같은 근면성과 노력은 있었지만 현지인들과의 협동과 봉사의 결핍으로 현지인의 반감을 사는 사례는 없었던가를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된다.
보도에 따르면 러시아 최고회의는 조만간 「재러시아 한인 명예회복에 관한 법률」을 입법화할 것이라 한다. 법안 내용은 강제이주 및 그 이후의 탄압을 불법적·범죄적 조처로 인정하고 희망자에 따라 강제이주전 거주지로의 귀환을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우리는 정부가 성의있는 외교교섭을 통해 이 법안이 조속히 통과되도록 노력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또 한차례 집단이주를 겪기 보다는 지금껏 살아온 삶의 터전에서 정당한 대우를 받으며 살게끔 민간차원의 교류가 활발해져야 한다. 예컨대 카자흐공화국에 백혈병치료 전문병원을 건립키 위해 서울의 감리교단과 혜성병원이 모금운동을 벌이는 노력은 매우 바람직한 민간교류의 본보기라고 할 수 있다. 반한인 파동이 더 이상 확산되지 않도록 정부와 민간단체가 함께 벌이는 교섭과 교류의 노력이 절실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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