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재 기자의 웰컴 투 풋볼 ⑧ 축구 해설 아무나 할 수 있다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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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지난달 29일 한국과 이라크의 대표팀 간 축구경기가 끝난 뒤 제주도 서귀포의 한 횟집에서 방송사 중계팀과 늦은 저녁을 했다. 요즘 각 방송사에서 활약하고 있는 비경기인 출신 축구 해설가들이 화제에 올랐다.

대부분이 30~40대 초반인 이들은 축구 기자나 에이전트 출신인 경우가 많다. 해박한 축구 지식과 조리 있는 말솜씨로 젊은 시청자층을 파고들고 있다.

이들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등 해외 프로리그를 주로 맡다가 최근에는 청소년.올림픽팀은 물론 국가대표 경기까지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방송사에서 이들을 선호하는 이유는 '꾸밈이 없고, 명쾌하며, 많은 정보를 알려 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젊은층이 좋아한다는 것이다.

이들에게 약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선수나 지도자 경험이 없어 지나치게 자료에만 의존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래서 축구팀을 만들어 감독을 맡기도 하고, 심판 테스트에 응시하기도 하는 등 '자기 계발'에 열심이다.

그렇다고 해도 경기인과 비경기인 출신의 차이를 숨길 수는 없다. 예를 들어 공격수가 사각(死角)에서 슈팅해 빗나갔을 경우 "각도가 없는데 슈팅을 하네요. 반대쪽으로 올려줬어야죠"라고 비경기인 출신은 말한다. 그러나 축구 선수 출신은 "달려오는 스피드와 저 각도로는 슈팅을 할 수밖에 없었어요. 억지로 발을 틀어 크로스를 하다가 발목에 큰 부상을 당할 수도 있거든요"라고 말한다.

더 큰 차이는 경기의 흐름을 읽고, 상황을 예측하고, 선수와 지도자의 심리를 전달해 줄 수 있느냐 없느냐다. MBC-ESPN 해설위원인 정효웅(FIFA 에이전트)씨는 "솔직히 우리가 백번 천번 봐도 도저히 알 수 없는 것을 선수 출신 해설가는 잡아낸다. 정말 깊이의 차이가 난다"고 실토했다.

그래서일까. 한 선수 출신 해설가는 "주변의 선.후배 중에는 '해설을 안 듣는 게 낫다'며 볼륨을 끄고 화면만 보는 경우도 많답니다. 그러면서 '축구인이 챙겨야 할 밥그릇도 뺏기고 있다'며 저보고 뭐라고 합니다"고 말했다.

요즘 "오~나이쓰"라는 감탄사로 인기를 얻고 있는 국가대표 출신 이상윤(MBC-ESPN 해설위원)씨는 자신의 해설가 데뷔가 '축구인의 자리 찾기'라고 했다. "우리는 경험은 많지만 말주변이 없다. 그래도 열심히 자료를 찾고 화술을 익혀 후배들의 모델이 되고 싶다"고 그는 말했다.

두 그룹 간 공존의 길은 없을까.

정효웅씨는 "상호 보완적인 관계가 될 수 있다"고 했고, 잡지사 축구기자 출신인 박문성 SBS 해설위원도 "우리가 메인이 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방송사가 최상의 '짝'을 찾아 주고, 역할 분담을 확실히 한다면 시청자는 훨씬 풍성하게 축구 경기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차범근.이용수씨를 능가하는 선수 출신 명해설가가 나오기를 기다리면서.

정영재 축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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