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 나쁘면 주식 외상거래 못 한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2면

신용등급이 낮은 사람은 앞으로 외상으로 주식을 사고파는 것도 어려워진다. 주요 증권사들이 은행처럼 신용평가사에서 제공하는 고객의 신용등급을 토대로 신용융자에 제한을 두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증권사의 연체 정보도 신용평가사에 통보돼 은행권에서 활용될 전망이다. 신용융자란 증권사에서 주식을 담보로 대출받아 주식 거래를 하는 것으로, 최근 잔액이 급증하면서 금융당국이 규제에 나섰다.

◆9, 10등급은 외상거래 불가=우리투자증권은 2일 고객이 신용융자를 받을 때 1~10등급으로 분류돼 있는 한국개인신용(KCB)의 신용등급 자료를 반영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고객의 신용 점수에 따라 신용융자 금액을 차별화하는 식이다. 은행이 아닌 증권사에서 신용등급을 활용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지금까지는 신용등급이 나쁘더라도 신용융자를 받을 수 있었다.

우리투자증권 관계자는 “매달 신용등급을 점검해 9, 10등급은 신용거래를 하지 못하도록 제한할 방침”이라며 “장기적으로는 신용등급에 따라 이자율·보증금률도 차별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KCB도 우리투자증권으로부터 연체 기록 정보를 받고, 이를 신용등급에 반영할 계획이다. 지금까지 증권사 고객 정보는 신용평가사에 제공되지 않아 점수에 반영되지 않았다. 하지만 앞으로는 증권사 신용융자를 연체할 경우 은행 이용에 제약이 생길 수도 있게 된 셈이다.

 KCB 관계자는 “은행권 대출과 증권사의 신용융자는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바로 활용하기는 힘들다”면서도 “신용융자 연체 기록 등을 평가 시스템에 어떻게 적용할지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움직임은 업계 전반에 확대될 전망이다. 현재 한국·동양종금·키움증권 등도 신용등급을 활용해 신용거래를 차등화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지난달 말 증권업협회가 개최한 14개 증권사 임원회의에서도 논의된 방안이다. 당시 참석했던 한 증권사 임원은 “고객의 금융거래 현황과 매매형태 등을 데이터베이스화하고, 신용등급을 활용할 수 있는 기준을 만들기로 의견을 모았다”며 “각 증권사의 정보를 공유해 여러 증권사에서 과다한 신용거래를 할 수 없도록 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라고 전했다.

 ◆신용융자 과열 식히기=증권사들이 이처럼 관리에 나선 것은 신용융자 잔액이 눈덩이처럼 불면서 증시 과열의 주범으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주가가 급락하면 투자자들이 빌린 돈을 제대로 갚지 못해 증시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신용융자 규모는 연초에 비해 무려 14배가 늘어 지난달 한때 사상 처음으로 7조원을 넘어서기도 했다.

 특히 금융당국은 물론 노무현 대통령까지 경고 메시지를 보내자 증권사들이 부랴부랴 ‘신용등급 적용’이라는 고강도 대책을 내놓은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증권연구원 노희진 연구위원은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고신용 고객에게 신용융자 한도를 높게 설정하고, 저신용 고객에게는 제한을 두는 게 일반화됐다”며 “고객의 신용 위험을 줄이면 시장 불안이 줄어드는 것은 물론 증권사들의 수익구조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손해용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