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서명 … 양국 의회 비준 전망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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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의회 장악 민주당서 '태클'

한.미 양국이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자유무역협정(FTA) 합의문에 최종 서명했다. 이로써 이제 공은 두 나라의 의회로 넘어가게 됐다. 양국 의회가 언제 비준하느냐에 따라 발효 시기가 정해진다.

하지만 서명 하루 전 미국 민주당의 하원 지도부가 FTA 반대 성명을 내며 강하게 태클을 걸었다. 민주당은 현재 상.하 양원을 장악하고 있다. 따라서 민주당 지도부의 반대 성명은 17개월을 끌어온 협상 못지않게 앞으로 비준 과정이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했다.

성명을 낸 4인은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과 스테니 호이어 하원 민주당 원내대표, 찰스 랭글 하원 세입위원회 위원장, 샌더 레빈 세입위원회 무역소위 위원장이다. 이들은 "현재 체결된 대로는 한.미 FTA를 지지할 수 없다"고 분명히 했다. 이들은 지난해 미국 자동차의 한국 수출이 5000대도 안 된 반면 한국은 70만 대 이상의 차를 미국으로 수출한 점을 거론했다. 미국도 내년 11월 대통령 선거가 예정돼 있어 비준 과정은 앞으로 정치 바람을 탈 소지가 많다.

의회 움직임과는 달리 행정부 관리들의 말을 들어 보면 큰 문제는 없어 보인다.

이날 서명식에서 칼로스 구티에레즈 미 상무장관은 "한.미 FTA는 미국이 지난 15년간 체결한 무역협정 가운데 상업적으로 가장 의미 있는 협정"이라면서 "미 행정부는 가능한 한 이른 시일 내에 의회가 이번 한.미 FTA로 인한 미국의 이득에 대해 확신토록 협조할 것"이라고 말했다.

수전 슈워브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FTA가 양국에 막대한 혜택을 가져다 주는 협정임을 의회가 이해할 수 있도록 상세히 설명하겠다"며 "그런 노력을 통해 한.미 FTA에 대한 잘못된 비판이 사라지고 의회의 폭넓은 지지를 받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김종훈 한국 협상단 수석대표는 미 의회의 FTA 비준 전망에 대해 "미국 의원 중에도 지지하는 의원이 많아 행정부가 꾸준히 설득하면 전망이 어둡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부시 행정부는 비준 동의에 필요한 표 계산을 치밀하게 한 다음 제출 시기를 결정할 것"이라며 "지금까지 미국 행정부는 FTA 비준을 받는 데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일단 미 행정부는 올 가을 비준을 받기 위해 필요한 표 계산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행정부가 의회에 협정문을 제출하면 의회는 90일 내에 비준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워싱턴=강찬호 특파원

한국
내년 총선 뒤로 늦어질 수도

열린우리당 서혜석 대변인은 1일 FTA 비준동의안 처리 전망을 묻는 질문에 "국익에 부합하는지 따져 보고 당의 입장을 정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은 총론 차원에서 협정 체결을 환영하고 있다. 하지만 국회 동의 과정이 순탄할 것으로 보는 의원은 많지 않다. 올 연말 대선과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정당 간, 의원 간의 입장이 엇갈리고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나경원 대변인은 "부족한 부분도 있지만 한.미 FTA는 전체적으로 국익에 보탬이 될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당 FTA 특위 위원장인 윤건영 의원은 "당 특위의 평가 작업 결과 FTA가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결론을 내렸지만 지역마다 이해 관계가 다르기 때문에 찬반 당론을 정할지, 권고적 당론을 만들지, 자유투표에 맡길지 아직 모르겠다"고 말했다.

열린우리당 김진표 정책위의장은 연내 처리 쪽에 무게를 뒀다. 그는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중산층을 끌어안으려면 FTA 비준에 반대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피해 계층 입장에서도 충분한 보상과 대책을 마련하려면 그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의장은 "미 의회가 FTA 협정문을 처리하는 상황에 따라 우리 국회의 비준안 처리도 영향 받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회 내에서 FTA를 반대해 왔던 의원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농촌 지역 출신과 민주노동당 의원 등 64명으로 구성된 '한.미 FTA 반대 비상시국회의' 의원들은 국정조사를 통해 국회 비준을 막겠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시국회의에 참여한 한나라당 권오을 의원은 "협정 내용을 뜯어보면 볼수록 불평등하고 불공정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따라 FTA 비준동의안 처리가 내년 총선 이후로 미뤄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한.칠레 FTA가 협정문 서명 후 1년 반이 지나서야 국회를 통과한 전례가 있는 데다 미 의회 다수당인 민주당 하원 지도부가 반대 입장을 표명했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는 9월 정기국회에 비준동의안을 제출해 연내 처리되기를 희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가영.남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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