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2번째 5·18 희생자(촛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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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못가것네 못가것네 원통도 해라.』
『어­허 어­허 어­허­야.』
8일 낮 12시 광주시청에서 약 1백m쯤 떨어진 시청네거리.
80년 5·18 광주 항쟁당시 공수부대원들에게 뭇매를 맞고 머리를 다쳐 그 후유증으로 온몸이 마비되는 바람에 12년에 걸친 투병생활끝에 지난 6일 숨진 정방남씨(31·광주시 쌍촌동 993의 30)의 마지막 가는 길도 생전에 그가 걸은 길만큼이나 험난하기만 했다. 노제를 지내려 시청앞으로 가던 꽃상여 앞에 전경들의 저지선이 성벽만큼 완강했던 것.
『가세 가세 내 갈 길로 가세.』
상두꾼의 구슬픈 상여소리만 계속 이어질 뿐 정씨의 꽃상여는 한 발자국도 전진을 못하고 차가운 아스팔트위에서 이리저리 흔들거리기만 했다.
『포클레인 불러. 망월동까지 갈 것 없이 그냥 여기다 파묻어.』
언어장애에다 대소변도 가리지 못하는 시동생 정씨를 뒷수발해온 형수는 전경들에게 길을 터 달라고 통사정을 하다 악을 쓰며 몸싸움을 시작했고 고인의 영정을 든 열두어살의 조카는 『이 사람들도 위에서 시켜서 하는 일잉께 그러지마,그러지말랑께』라며 어머니의 상복소매를 잡아당겼다.
『마지막 가는 길이니 원이라도 없게 그냥 보내주지 왜 막는디야.』
『저승에 가서라도 편안히 잠들게 해야하는디 이래갖고 눈을 감을 수 있겠어.』
5·18부상자 동지회 회원들뿐만 아니라 상여주위에 둘러선 시민들은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발걸음을 떼지못하고 안타까워했다.
결국 정씨의 장례행렬은 3시간동안 몸부림친 끝에 시청앞 노제를 포기하고 네거리에서 약식으로 노제를 치른 뒤 오후 3시40분쯤 다시는 올 수 없는 망월동길에 올라 떵거미가 깔리는 무등산자락에서 한많은 젊음을 마감해야만 했다.
정씨의 죽음으로 5·18관련 부상의 후유증으로 인한 사망자는 공식적으로 74명으로 늘어났고 당시 사망자 1백88명을 포함해서는 2백62번째 희생자가 됐다.
비록 주검은 땅에 묻혔어도 결코 풀어질 수 없었던 한과 응어리는 이승에서 맴돌고 있는 이들 5·18영혼들을 잠재우는 것이 새로 출범하는 문민정부의 피할 수 없는 과제이자 의무라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광주=이해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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