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독성 물질을 들이마시고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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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이 프로그램이 나간 뒤 어쩌면 강남 집값은 더욱 하락세를 보일지도 모르겠다. 건축 자재업자들은 SBS에 몰려와 집단 항의 시위를 벌일 수도 있다.

다소 과장된 예견이지만 SBS가 2004년 신년 기획으로 선보일 3부작 다큐멘터리 '환경의 역습'(1월 3, 10, 11일 밤 10시55분)의 문제 제기는 그만큼 도발적이다. 그동안 '잘 먹고 잘 사는 법''육체와의 전쟁' 등으로 건강 다이어트 신드롬과 채식 열풍 등 엄청난 사회적 파장과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박정훈(45)PD는 이번에도 특유의 도전 의식을 잃지 않았다. 그가 이번에 빼든 칼날은 우리의 평범한 '도시'를 향해 있다. 결론은 명쾌하다. "우리가 잠을 자고 있는 집과 매일 숨쉬는 공간, 그리고 수많은 먹거리들은 우리를 조금씩 죽여가고 있다"는 것이다.

1부 '집이 사람을 공격한다'는 도시인들이 95%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실내에 대한 보고서다. 사람이 하루 섭취하는 음식물은 6㎏인데 비해 하루 마시는 공기는 25㎏이라는 것. 그런데 이 실내 공기가 각종 화학제품에서 뿜어져 나오는 보이지 않는 유독 물질로 오염돼 있다고 제작진은 진단한다. 이름도 낯선 '새집 증후군' '화학물질 과민증' 등 신종 질환자가 차례로 소개된다. 수백건의 제보 중에서 추려낸 중 3년생 민수와 네살배기 형래의 사례를 통해 건축자재에서 뿜어내는 독성물질에 오염된 실내 공기의 폐해를 고발한다.

오는 1월 10일 방송되는 2부 '우리는 왜 이 도시를 용서하는가'는 자동차 배기가스와 너저분하게 도시를 황폐화시키는 간판들에 대한 분석이다. 특히 노점상 남성 31명을 대상으로 배기가스 노출이 정자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한 실험 결과는 흥미롭다. 3부 '미래를 위한 행복의 조건'에서는 농약.살충제로 인한 학습능력 저하, 항생제 남용의 위험을 지적한다.

박PD는 "자연에 역행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의 삶의 질이 과연 온전하냐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다소 비극적인 내용이지만 이를 통해 소비자가 바뀌면 생산자가 바뀌고 사회가 달라질 것이란 믿음은 변함 없다"고 말했다.

탄광에서 산소 부족을 가장 먼저 경고하는 것은 카나리아라고 한다. 이 프로그램이 우리 사회에 대한 카나리아로 작용할 수 있을까.

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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