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생적 성장기반 튼튼히/조순총재가 본 한국경제의 나아갈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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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금융자율화로 민간창의성 부축/투자는 양보다 질… 경쟁력 높여야
조순한은총재는 한국경제의 향후 발전을 위해선 「경제의 자생적 성장기반」을 공고히 해야 한다며 새정부가 이같은 정책선택을 해줄 것을 희망했다. 다음은 조 총재가 7일 한국인간개발연구원이 롯데호텔에서 주최한 조찬회에서 한 「오늘의 한국경제 어떻게 볼 것인가」의 강연 요지.<편집자주>
신정부는 냉정하게 원시적 시각에서 경제의 자생적 성장기반을 공고히 하는 산택을 해주기 바란다. 우리는 정부주도하에서 고도성장을 한 60년대이후 지금까지 우리 경제의 성과를 평가하고 그 정책방향을 모색하는데 미시적인 공급 측면보다 거시적인 총량측면의 시각에 많이 의존해왔다. 성장률을 극대화하려는 정책기조하에서 성장률이나 투자율,또는 수출증가율 등의 거시지표에 지나치게 치중하고,성장의 결정요인이나 그 내용에 대한 질적·구조적 분석을 등한히 해왔다. 그러나 이제 우리 경제는 정부주도하에서 고도성장을 추구하던 시대는 지났고 민간의 창의성 발휘를 통한 자생적 성장을 이뤄야 할때다.
92년 하반기부터 경제가 예상밖으로 냉각된 것은 그동안 부풀어 올랐던 거품이 꺼지고 안정이 점차 정착됨에 따라 많은 부실요소가 드러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거품해소는 마이너스 성장까지 보인 87년이후의 미국 경제,91년이후의 일본경제에서 나타난 현상에 비하면 훨씬 가볍다. 그러나 우리 경제는 30년동안 지속적인 인플레속에 구축된 구조적 취약성 때문에 거품이 조금만 꺼져도 그것이 기업의 수익성을 압박하고,자금흐름을 경색되게 해 투자를 저해하고 성장률을 저하시키는 정도가 현저하게 되는 결함이 있다.
우리 경제 전반에 걸쳐 공급의 원가가 높고 효율이 낮다는 것은 ▲기업차원에서는 임금의 급상승과 고금리,취약한 재무구조,기술개발의 부진 등으로 인한 기업의 수익률 저하 ▲산업차원에서는 노동집약적 산업이 도태되는 등 산업간의 불균형(제조업과 서비스업의 불균형,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불균형 등) 심화로 인한 경제전반에 걸친 능률의 저하 ▲금융산업의 위축과 비효율 등을 들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정부의 경기활성화대책,즉 재정·금융의 확대를 통한 총수요의 증가책을 바라고 있다.
그러나 총수요의 증가책이 장기적으로 경제의 활성화를 가지고 올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그것은 지금까지 많이 쌓여 있는 민간의 유동성을 자극해 물가상승을 유발하고 또다시 부동산가격의 상승,임금상승의 요구를 가져오고 국제수지를 악화시킬 것이다. 이런 사태가 일어나면 정부는 1∼2년뒤 긴축정책기조로 회귀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며,안정과 성장 사이를 왔다갔다하는 동안 결국 그동안 모든 경제주체들이 고통을 참아가며 힘들여 추진해온 구조개선 노력은 허사로 돌아갈 것이다.
최근 성장둔화의 1차적 요인은 투자부진인데 이는 곧 우리 경제의 공급체계에 자리잡은 고비용­저수익체질에 기인한다. 이러한 체질의 치유없이 억지로 돈을 풀어 투자촉진책을 쓰면 쓸수록 현재의 왜곡된 금융관행에 비추어 자금은 효율성이 적은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고 그 결과 취약한 공급체계를 더욱 악화시킬 우려가 짙다. 우리 경제가 필요로 하는 것은 투자의 양보다 경쟁력을 제고시킬 수 있는 투자의 질향상이다. 경제계 일각에서는 경영혁신에 전력하기보다 정부가 무엇인가를 해주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먼저 기업의 자발적 노력이 있어야 근로자의 협력과 정부의 적절한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을 것이다. 정부도 민간기업활동을 저해하는 불합리한 각종 규제를 폐지해 나가고 금융자율화를 적극 추진함으로써 민간의 창의성을 고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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