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통합 깊은 고려를…/한승주(시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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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대통령 선거가 끝나자 당선자에 대한 국민의 기대는 자못 크다. 신문과 잡지의 지면은 다음 대통령에게 국정을 쇄신하고,개혁을 단행해 주고,정직하고 도덕성 있는 지도력을 발휘해 달라는 부탁과 당부로 가득차있다. 과연 대통령 당선자가 이러한 기대에 부응해줄 수 있을 것인가. 쇄신과 개혁이 성공적으로 이행될 수 있느냐는 물론 지도자의 결의와 능력에 많이 달려있다.
○야 비판 선정의 원동력
그것은 또 정치적인 동기를 필요로 한다. 즉 국민들의 집요한 압력뿐 아니라 정부를 독려하고 여당의 잘못을 비판할 수 있는 야당의 존재가 선정의 효과적인 원동력이 될 것이다.
그러나 선거후 우리가 승자에게만 모든 관심과 기대를 쏟고있는 동안 패자인 야권이 앞으로 어떠한 행로를 가야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등한히 하고있다. 물론 우리는 김대중씨가 패배를 시인하고 깨끗이 정치에서 손을 떼는 행동에 존경심과 연민을 느낀다. 또 민주당이 어떠한 지도체제를 가질 것인지,정주영국민당대표의 향배가 어떻게 될 것인지,박찬종의원의 정치적 부상이 어디까지 이를 것인지에 대해 궁금히 여기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양김의 경쟁시대가 지난 오늘날 야권 전체는 물론 우리나라 정치발전에 중요한 것은 어느 개인의 정치적 진퇴보다는 야당이 야당으로서 제구실을 해낼 수 있느냐 하는 문제라 하겠다.
민주체제에서 야당이 해야할 일이란 무엇인가. 무엇보다도 야당은 선거에서 국민에게 선택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진정한 선택가능성이야말로 민주정치의 핵심이다. 예컨대 여당이 관권과 미디어 지원으로 장기집권할 수 있다는 안일한 생각을 하고 있는 한 독주와 오만은 물론 부패와 부정도 막기 힘들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도 「갈아보자」는 투표인수가 과반수였는데도 야권은 그러한 여망을 담을 수 있는 인물과 구조를 갖지못했다. 여당후보의 지지가 42%에 불과했는데도 여권이 「압도적인 승리」와 「신바람 나는 정치」를 구가하도록 만들어준 것이 바로 야권의 편협성과 분열에 그 원인이 있다는 것을 야당인은 인식해야 할 것이다. 만년 기득권을 누리는 여권이 여당의 「프리미엄」만 가지고도 계속 집권할 수 있는 상황에서 자진해 정직한 정치,화합의 정치를 베풀어줄 것을 국민이 기대하는 것은 아무래도 너무 낙관적인 생각이라 하겠다.
○집권기회 기틀 다질때
따라서 야당 자신을 위해서는 물론,나라와 정치의 발전을 위해서도 절실히 필요한 것이 야권통합이다. 3년 전에 당시 김영삼민주당총재가 여당과의 합당으로 오늘날 대통령에 당선되었던 것 같이 이번에는 야당들이 합당하여 3년 후의 총선,그리고 5년 후의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는 능력과 기회를 다질 차례다. 야권의 통합은 김대중씨의 정계은퇴로 어느때 보다도 그 가능성이 커졌다. 이제 호남은 지역의 한을 풀어줄 수 있는 후보에 집착하지 않게 되었다. 민주당이 마침내 지역정당의 이미지에서 벗어날때 국민당은 물론 신정당도 독자야당으로서의 존재이유를 상실하게 될 것이다. 동시에 야권이 통합함으로써 선거와 정당의 지역화 문제를 해소하는 계기를 마련해줄 것이다.
여기서 박찬종의원의 행보가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그는 이번 선거에서의 선전을 발판으로 다음 대선에 도전할 것이다. 개인의 자질과 인기로 보아 그가 「대통령감」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가 여권이나 야권의 대표주자가 아닌 제3의 후보로 출마하는 한 그는 결과적으로 야권의 표를 분산시킴으로써 여권후보의 승리를 보장해주는 보조역 밖에 하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그가 지금의 지지기반을 살려 실제로 당선가능하게 하는 방법은 여권에 합류하든지,아니면 야권통합에 동참해 정정당당하게 차기대선후보로서의 당내 경합에 응하는 것이다. 그가 원래 독자적인 행동을 취했던 명분이 1987년 야당 단일후보 합의에 실패했던 양김씨에 대한 반대였던 만큼 이제 범야권과는 별개 후보를 고집하는 것은 바로 그 당시 양김씨의 우를 반복하는 일이 될 것이다.
○변화 지지세력 더 많아
여당이 대선에서 이겼다 해서 야당의 앞날에 희망이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다. 야권이 통합하는 경우 다음 총선은 물론 대선에서도 승리할 수 있다. 변화를 원하는 야권의 지지표가 여권의 장기집권을 원하는 표보다 더 많을 수 있다는 것을 야당은 잊어서는 안된다. 또 대선에서 야권이 졌다고 해서 모든 것을 당선자에게만 떠맡겨서도 안된다. 야권에도 정치와 국가발전에 있어서 막중한 책임이 있다. 야권이 실의에 차있고 분열을 계속하는 한 여당은 진정한 쇄신과 개혁의 필요를 절실히 느끼지 않을 것이다.
◇필자역력
▲53세 ▲서울대 외교학과졸 ▲미 캘피포니아대(버클리)에서 정치학박사 ▲캘리포니아대 및 뉴욕대 교수 ▲현 고려대 정외과 교수 ▲저서 『제2공화국과 한국의 민주주의』『전환기의 한미관계』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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