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체질 이대론 안된다(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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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야당가가 계속 어수선하다. 김대중씨가 빠진 민주당은 3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권경쟁에 들어가 밖으로 신경을 쓸 여유가 없는 것 같고,국민당은 내분과 도덕성 위기까지 겹쳐 지리멸렬상태에 빠져 있다.
민자당이 과거 어느 때보다 강력한 여당으로 등장하는 판에 이를 견제·감시할 야당세력이 이처럼 상대적으로 약화·침체상태를 헤매는 것은 국가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는 이미 대선후 야당의 조속한 태세정비와 새환경에 맞는 자체변신을 촉구한 바 있지만 현재 야권의 상황을 보면 상당기간 활력있는 새 야당의 모습을 보기 어려울 것 같아 걱정스럽다.
우리는 특히 국민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태를 개탄하면서 국민당이 곧 중대한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본다.
우선 1인체제로 당을 이끌어온 정주영씨의 최근 행태를 보면 그가 더이상 국민당을 이끌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그의 이른바 두가지 「실수론」은 공인이 아닌 평범한 사인이라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중대한 「실수」를 했다면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함은 초보적 상식이다. 그러나 정씨는 책임에 관해서는 지금껏 아무런 말이 없다. 이런 「실수」뿐만 아니라 선거기간에 터진 현대중의 비자금사건,현대목재사건 등에 대해서도 그는 해명할 입장임이 분명한데도 전혀 언급없이 넘어가고 있다. 게다가 정씨는 새한국당의 이종찬씨에게 50억원을 줬다고 느닷없이 폭로했다. 이씨는 받은 일이 없다고 하니 두사람중 한사람은 거짓말을 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정씨로 하여 빚어지고 있는 이런 일련의 사태가 과연 정치판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인가. 과거 정계에서 숱한 스캔들이 있었지만 이처럼 막가는 식의 정치행태는 들어본 기억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는 당내 반발이 나오는 것도 전혀 이상할게 없다. 김동길씨가 당직을 사퇴하고 정씨의 이선후퇴를 요구하고 나선 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모르겠으나 당의 지도력을 재점검·재확립하는 노력이 국민당의 시급한 과제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국민당으로선 이번 기회에 환골탈태의 과정을 밟든가,아니면 야권전체를 통틀어 새로운 야권구도를 그려보든가 무슨 단안이 있어야지 현재 상태로는 바람직한 공당의 역할을 하기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뜻있는 야당인이라면 대선후의 새로운 정국을 맞아 전체 야권의 진로를 놓고 진지한 고민과 모색이 있어야 하리라고 본다. 이대로 가서 5년후엔 집권이 가능할 것인가,당장 「강여」에 맞설만한 건전 야당의 체제를 갖출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해야 하고 그것을 가능케 할 현실적 방안을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 현실에 안주해 현재의 테두리안에서 당권을 잡고 요직을 차지하는데만 열중한다면 활력있고 단합된 수권야당의 모습은 좀처럼 보기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 야당인사들의 분발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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