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색 내기 식 전시행정 이제 그만…|진정한 문화창달에 노력을|새 정부에 바란다|박용구<음악평론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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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국가란 경제와 문화의 이원구조를 딛고 이루어지는 정치기능 체를 말한다.
누가 보더라도 명명백백한 이런 논리가 근대화의 독립국가를 지향하는 나라에서 반세기 가깝도록 제대로 기 능한 적이 없었다면 누구 나가 또 한번 놀랄 것이다.
그 뿐이랴. 나 같은 변변치도 못한 자유주의자가 독선적인 이 정권 밑에서는 국외 도피를 해야 했고, 독재적인 군사정권 밑에서는 감옥을 경험해야 하는 수난을 겪었다면 정치가 병이 들어도 이만저만한 병이 아니다. 나는 유신체제 때에 그 병을 「안팎곱추」로 비유한 적이 있다.
진실로 반세기 가깝게 세월이 흐른 뒤에야 우리는 건강을 회복할 정치를 기대해 볼만한 기회가 온 것 같다고 생각해 본다. 어떤 곤경에서도『그럴 수도 있지 뭐』로 속는 체 해 온 착한 국민들도 이번에야말로 건강의 회복을 기대하고 있다. 화려한 공약들이 국민을 들뜨게도 한다.
그러나 과연 공약이 실현된다고 해서 경제와 문화의 일그러진 이원구조가 균형 잡혀 이른바「새 한국 상」을 보게 될 수 있을까.
후기산업사회를 향한 경제정책에 있어서는 끊임없이 평가기능을 활용해 진단을 내리고 강력한 추진력을 발휘하면 어느 정도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으리라.
과거의 군사정권도 경제정책면에서는 무역입국의 목표를 세워 오늘의 성장을 가져왔다.
어떻게 보면 국제정세에 신속히 대응하는 궤도수정만으로 성장의 계속은 가능할지 모른다.
그런데 왜 새삼스럽게「새 한국 상」인가.
모든 국민이 자기나라를 건강체로 볼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식인은 지식인 나름대로, 서민은 서민 나름대로 자기나라가 일그러진 병 약체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 원인을 따지고 들어가면 누구 나가 알고 있는「국가란 경제와 문화의 이원구조 위에 정치행정이 있다」는 사실을 소홀히 하거나 망각해 경제와 문화의 균형 잡힌 성취에 실패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하기야 억압과 규제를 능사로 하는 전제적이거나 독재적인 권력이 균형 잡힌 성취에 성공할 까닭이 없었다. 이제 새 정부는 그 불행의 원인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문화정책에 대한 비중을 높여 나가야 한다.
대통령 당선자는「생활정치」를 내세우고 있으나「문화예술의 생활화」없이 어떤 생활정치가 가능하다는 것이며, 고작 1년 국가예산의 1%도 못되는 문화예산으로 무엇이 가능하다는 것인가.
발상의 일대전환이 없으면 과거의 군사정권과 마찬가지로 즉흥적인 전시효과에나 치중할 문화행정을 펴 나갈 공산이 크다고 보겠다. 더구나 무능의 합리화와 목표 바꿔치기로 이름난 관료체제의 경직성이 온존된다면 그 공산은 더욱 확실하다.
더구나 과거 반세기 가깝도록 정부가 경제적으로 지원해 오는 문화정책조차 관료체제로 운영되고, 그 성과를 통시적으로 분석·검토하는 평가기구조차 없는 우리나라에서「문화예술의 생활화」라든가, 무역입국에 맞물리는 예술입국 따위는 그림의 떡이 아니면 백일몽이라는 사실을 새 정부는 알았으면 좋겠다.
문화적 토양이 없으면 진정으로 건강한 사회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모두가 확인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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