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품」없애며 안정기조유지/되돌아본 올해의 한국경제/경제부기자방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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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안되면 모두 네탓”금융 「동네북」/상업은사건 「고금리 상처」곪아터진 것/차기정부 6공초기보다 여건 좋은편/「정보사땅 사기」경제현주소 보여준 “잣대”
대선의 소용돌이 속에서 경기침체기를 지나며 세계 경제질서 재편에 좌우된 92년의 경제는 유달리 많은 변화를 겪었고 더욱 많은 숙제를 93년으로 넘겼다.
한햇동안 우리 경제와 흐름을 함께 한 경제부 기자들의 방담을 통해 우리 경제의 매무새를 다시 추스려 보는 자리를 마련한다.<편집자주>
­올해 경제부 기자의 방담은 정치부나 사회부와 함께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거시경제 정책의 기조나 미시적인 제도개선이 역시 가장 중요한 논의대상이긴 해도 올해는 재벌의 정치참여,대형 금융·사기사건 등 정치·사회 현상과 함께 「반죽」이 된 경제이슈들이 유난히 많았거든요.
정치경제랄까,사회경제랄까 그런 일들이 앞으로는 더욱 많아질 겁니다.
­정치일정과 연관시켜서 올해 경제의 큰 흐름을 한번 정리해볼까요. 대통령선거를 치르면서 경제의 거품을 끄겠다는 인기 없는 정책을 폈던 것을 보면 일단 우리 전체의 「수준」이 그만큼 올라갔다고 치부해도 좋을성 싶습니다. 그러나 지난해 정치권이 「1백억달러 적자」소리를 그렇게 듣기 싫어했고 실제로 경제의 거품현상이 심각했던 것을 돌이켜 보면 올해 경제정책의 기조는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측면이 강합니다.
어쨌든 거품을 꺼가는 과정에서 당연히 기업 부도나 금융사고 같은 것이 곪아 터질 수 밖에 없었고,그때마다 정치권에서는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재무장관의 금리인하 발언을 두고 한은이 기자회견을 통해 이를 반박하는 해프닝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보아 선거때까지 경제정책의 기조는 큰 바람을 타지않고 잘 버텼다고 볼 수 있습니다.
○냄비체질 보여줘
­그런면에서는 김영삼당선자가 노태우대통령보다 한결 좋은 경제를 넘겨 받는 셈이라고 할 수 있지요. 과거에 넘겨 받았던 경제는 겉으로는 화려해도 속으로는 거품이 가득차 있던 경제요,이번에 넘겨지는 경제는 고통을 치르며 거품을 끌만큼 끈 경제이기 때문입니다.
­거품을 끌만큼 끈게 아니라 지나치게 껐다고 해야 옳지요.
우리가 흔히 냄비체질이라고 하는데 올해에도 경제정책의 가장 큰 잘못은 바로 그같은 냄비체질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는데 있습니다.
3%대의 경제성장을 두고 거품을 잘 껐다고 한가한 소리를 할 수는 없을 터이고,금리를 인하하자는 것도 경제정책의 기조를 바꾸자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의 미조정을 하자는 것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선거 전에는 금리인하 주장이 오해를 받을 수 있었겠지만 선거도 끝났으니 이제 금리자유화 일정과 연관시켜 금리문제를 다시 정색을 하고 거론할 필요가 있습니다.
­91년 하반기부터 겨우 1년반 정도 해온 구조조정인데 그 기조 자체를 흔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과열됐던 경기를 끌어내리려면 부작용이 있을 수 밖에 없지 않습니까.
만의 하나 지금 경제정책의 기조를 근본적으로 바꾼다면 그동안의 고통과 노력이 다시 물거품이 되고 말겁니다.
이런면에서 새정부가 단기간의 성과나 인기에 집착하지 말아야 합니다. 중소기업 도산,실업률 증가 등 우리가 극복해야 할 고통의 정도가 아직 감내할 수 없는 정도는 아니라고 봅니다.
­기술개발·제도개선·규제완화 등을 통한 경제의 효율성 제고로 성장잠재력을 높여야지 물량투입 증대로 성장의 숫자를 올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재계도 경기부양보다 국제경쟁력 강화라는 표현을 씁니다. 규제완화 등 정책운용의 묘를 살리고 제도를 개선해야 할 분야가 얼마든지 많다는 겁니다. 그러나 금리만큼은 낮추어야 하고 또 금융의 자율화가 절실하다는 것이 재계의 일관된 주장입니다.
­올해의 투자부진이 과연 금리 때문이냐는 데는 이견이 있습니다.
과잉투자가 문제되었던 지난해보다 올해는 확실히 실세금리가 내려갔는데도 투자는 부진했습니다.
사실 거품을 끄는 과정에서 이처럼 실세금리를 내렸다는 것도 하나의 큰 경제사건인데,이만큼 금리를 내리고도 과거보다 더 고금리가 원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것은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 금리가 아무리 높아도 과열성장이 계속되는한 별소리 없이 굴러가던 기업들이 이제 금리가 낮아서가 아니라 인플레 중독증에서 깨어나려니 고통을 못참고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지요.
○인플레극복 고통
­무역협회 등 업계는 올해 임금은 총액임금제 시행 등으로 비교적 안정됐는데 금리가 여전히 선진국에 비해 높은 탓에 금융비용 부담이 커 가격경쟁력을 떨어뜨린다고 봅니다.
­올해처럼 금융이 「동네북」이 된 해도 별로 없을 겁니다. 금리를 선진국 수준으로 낮추고 금융의 자율화를 통해 효율을 올려야 한다는 것은 백번 지당한 이야기지만,따지고 보면 지난 30년간 금융이 산업의 뒷바라지를 하느라 스스로의 논리를 희생하며 온갖 일을 다 해주고 나니까 이제는 네가 가장 낙후돼 너 때문에 모든 일이 안된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천덕꾸러기 신세가 된 격입니다.
실제로 정부나 재계 모두가 금융자율화의 절실함을 강조하면서도 똑같은 입으로 저마다 당장 필요한 정책자금 지원을 요구하고 있고,경쟁력을 잃고 쓰러지는 기업도 그 책임을 모두 금융지원 부족으로 돌리곤 하지 않습니까.
­최근 사회문제가 될뻔했던 중소기업인의 자살사건도 그런 시각에서 보여지더군요.
사람이 죽을 때는 병인이 무엇이었든 다들 마지막에는 심장이 멎어 숨을 거두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업이 도산할 때는 결국 그 원인이 어디 있었든 마지막에는 모두 자금이 모자라 쓰러지는 겁니다.
­어쨌든 우리 경제발전을 가로막는 큰 요인중 하나가 낙후된 금융이라는 것에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고 새정부의 조직개편이나 경제정책의 주안점도 바로 금융에 두어질 것이 확실합니다.
­경제에 불어닥칠 큰 「정치바람」은 정작 이제부터가 아닐까요.
재벌의 정치참여가 올해의 가장 큰 이슈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선거과정을 통해 이제 대기업 정책에 무언가 근본적 변화와 수정이 없으면 안되겠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재계가 긴장하고 있는 것도,또 현대그룹과 국민당의 관계에 대해 몹시 못마땅해 했던 것도 다 그같은 「반작용」이 거셀까봐서인데,올해 실체가 명확히 잡히지도 않은채 실제 이상으로 거창하게 푸장돼 논쟁까지 벌어졌던 「신산업정책」이란 것이 정작 다음 정부에서 나오지 않을까요.
­기본적으로 혁신적 변화는 없지 않겠습니까.
새 대통령 당선자가 근본적으로 기득계층의 지지를 얻어 당선됐다는 점이 그렇고,또 거시경제적 상황을 개선하는 것이 먼저고 개혁은 그같은 상황 호전을 바탕으로 해야만 가능하다는 것이 민자당의 공약이기도 했습니다. 만일 변화가 있다 해도 새로운 산업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지 무슨 혁명적 정책을 내민다는 것은 아닐겁니다.
­재계에서는 6공 들어 이제 정치민주화는 어느정도 이루어졌기 때문에 새정부는 경제 민주화에 힘을 쏟을 것이고 이는 곧 재벌에 대한 정책전환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 과정에서 대기업들은 국민들이 대기업을 바라보는 시각이 너무 감정적이라는게 불만이고,그러다가 90년 5·8조치와 같은 초법적 조치가 또 나오지 않을까 불안해 하는 것이지요.
­정부가 추진하는 대기업 정책의 명분은 예나 지금이나 경쟁력 강화입니다. 예컨대 소유와 경영의 분리라는 것도 세제강화를 통한 자연스런 소유분산이지 강제적 정책을 펴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상공부 등 관계부처의 구상도 기업의 규모는 더 키우되 소유는 분산시켜야 한다는 것이고,부의 불균형 문제도 정치·사회적으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 불균형 해소를 통해 산업의 효율성을 높이는 차원이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면에서 새정부가 내건 공약중 가장 중요한 이슈는 뭐니뭐니 해도 94∼95년께 실시한다는 금융실명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명제는 정치자금과 재벌의 상속이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하겠는데,경제의 충격을 줄이고 지하경제로의 도피를 막으면서 실명제를 실시하기 위해 최고세율을 낮춘다거나 장기저리의 채권을 발행한다거나 하는 「현실안」을 어떻게 관철시키느냐는 것은 결국 새정부의 정치역량에 달려있다고 보아야 하겠지요.
­기업들 못지 않게 올해는 금융기관들도 몸살을 앓았습니다.
저금리로의 전환과정 자체가 고통스러웠던데다 상업은행 명동지점 사건 같은 것도 따지고 보면 과거 고금리 시대에 잠복해있던 현상이 더 이상 굴러가지 못하고 곪아 터진 것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당국이 「상업은행 사건은 개인범죄지 제도적인 것이 아니다」고 규정했던 것은 좀 낯두꺼운데가 있습니다.
기자들이 보기에는 글쎄 제도적인 것과 개인적인 것이 반반이라고 할까요. 아무튼 제도에 주목하게 되더군요. 올해 금융이 동네북이 된 것도 다 그같은 제도적인 면이 모두들 불만이기 때문 아닙니까.
마찬가지로 당국자들은 언짢아할지 몰라도 기자의 입장에서는 올해 금리가 내려간 것이 과연 거시경제 운용 때문이냐,당국의 행정지도 때문이냐는 의문이 자꾸 떠오르더군요.
­정보사땅 사기사건은 우리 경제의 수준을 나타낸 한심한 「돌발 사건」이라고 보아야 겠는데 그 과정에서 전직 한은총재의 「거짓말」은 참 착찹한 것이었습니다.
○북방수출 효자역
­올해는 「북방」이 그래도 어느정도 수출을 먹여 살린 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이와 관련해 앞으로의 북방교역과 수출전망은 어떻습니까.
­수출을 단기적으로 보면 우울하고 답답하지요. 그러나 당장 파는데만 신경을 쓰다 보면 근본적 해결이 또 늦어질 수 있습니다.
북방교역에 대해서는 어느 분이 『북방은 우리 경제의 활로가 아니라 퇴로다』라고 했던 말이 자꾸 기억이 나는데,앞으로의 대외교역을 어떤 방향으로 끌고 나갈지 정부나 기업들은 장기적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당장 가장 큰 관심은 새정부의 조직개편과 인사인데 벌써 입만 열면 『우리 부처가 부총리급 부처로 강화돼야 한다』는 소리가 몇몇 부처에서 나오고 있어 과연 어떤 그림이 그려질지 기대반 불안반입니다.
­결국 새정부가 단기적 성과에 집착하지 않으면서도 개혁을 가시적으로 추진해야 하는 어려운 「조화」를 어떻게 이루어내느냐가 앞으로의 가장 큰 과제라고 하겠습니다.<정리=양재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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