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용의 『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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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작가의 참다운 직분의 소재가 「의미 있는」이야기를 하는데 있느냐, 아니면 「의미 있게」이야기하는데 있느냐 하는 문제는 오랫동안 시비 거리가 되어왔다. 그것이 잘못된 문학적 인식으로부터 연유한 소모적인 시비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야 진작 밝혀진 셈이지만 우리의 경우 그간 목소리를 높여온 쪽은 주로 내용 우선론자들이었다.
그들은 기법만을 추구하는 문학은 속 빈 강정에 다름 아니다라고 주장해왔고 문학이 수사에나 집착해서는 스스로를 장식과 유희에 떨어뜨리게 되리라고 경고해왔다.
그러나 어떤 문학작품의 내용이 의미 있고 가치있는 것이라고 평가되어 질 수 있다면 그것은 예외 없이 의미 있고 가치있게 담론화된 결과다.
김병용씨의 『총』(『문예중앙』·겨울호)은 전혀 새삼스러울 것이 없는 이같은 생각이 논리적으로 반박될 여지가 없는 문학적 인식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줘 더더욱 흥미있게 읽혔다.
이 소실은 우리 사회의 치명적인 모순 구조와 불화의 구조에 두루 시선을 보내고있다. 전라도의 어느 지역쯤으로 짐작되는 도시의 한 고등학교 창고에 보관돼 있던 총이 한 자루 분실됨으로써 사건은 발단한다.
그리고 예상됨직한 온갖 소동이 뒤따른다. 사실은 기계 공작에 유별난 취미를 가진 한 학생에 의해 저질러진 하찮은 사건에 지나지 않지만 총이 한 자루 분실되는 사건은 학교와 지역사회에 엄청난 파문과 충격을 불러일으키고 종국에는 양심과 능력을 아울러 가진 의식 있는 한 젊은 국어교사가 범인의 누명을 덮어쓰고 희생되는 데까지 발전하고서야 서술은 마감된다.
이같은 줄거리만을 통해 판단하면 이 소설이 부각시키고 있는 쟁점이나 이야기의 양상은 전혀 새로울 바가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을 읽는 과정이 시종 긴장감과 긴박감을 수반하는 과정이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해답이야 뻔하다. 작가가 흥미 있고 경이롭게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일 터이다.
『총』은 무려 원고지 1천2백여장의 분량을 가진 소설이다. 적잖은 분량이지만 그러나 결코 장황하거나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긴박하고 긴장된 독서의 과정에서 더러는 분개감으로 가슴이 벅찼고, 또 더러는 우리가 살아온 삶의 사회적·도덕적 정황에 새삼스럽게 한숨도 지었다.
『총』이 거둔 성과는 작가의 치밀한 이야기하기의 전략과 기법이 거둔 성과인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모조품과 날조품이 판치는 근래의 우리문학 현실에서 그러한 성과는 더한층 돋보인다. 【한용환<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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