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호완 교수 '개천에서 용 나기' 정책 반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5면

"소외 계층의 대학 진학률을 높이려면 공교육의 질을 높여야 한다. 그게 교육 문제의 핵심이다."

서울대 장호완(지구환경과학부.사진) 교수협의회장은 27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발표한 '기회균등할당제'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그는 "복지나 분배보다 더 중요한 게 미래 세대를 위한 교육 투자"라며 "소외 계층의 정원 외 입학을 늘리겠다는 것은 '립서비스'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노 대통령은 2008학년도 서울대 입시안 고수를 "서울대의 자존심 때문"이라고 말했다.

"공개적으로 교육부의 승인을 얻고 학부모.학생들과 약속한 2008학년도 입시안은 서울대가 지켜야 할 의무이지 자존심의 문제가 아니다. 그걸 자존심이라 하니 이해할 수 없다."

-대학들에 "약자를 배려 않는 강자" "집단이기주의를 버리라"고도 했다.

"강자라면 왜 그 자리에 나가 면박을 당했겠나. 대학들이 신뢰할 수 없는 내신을 신뢰하라고 윽박지름을 당하니 집단적으로 의견을 표출하는 것 아닌가."

-총장들에게 "공공의 이익을 위해선 대학 자율도 규제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는데.

"대학의 공공 이익 기여란 것은 학문하는 행위로 구현돼야 한다. 그게 대학의 존재 이유며, 이를 위해 대학에 자율권이 주어지는 것이다. 갑자기 총장들을 불러서 공공의 이익을 거론하며 본인의 얘기를 하는지 모르겠다. 권력자가 공공의 이익을 말하는 것은 독선이다."

-우리 교육정책의 문제는.

"노 대통령이 '개천에서 용 나기'를 말하는 것은 감상주의다. 프랑스의 사르코지 대통령이나 영국의 브라운 총리는 저수지에서 용을 대량으로 양식하려는 실천적 교육정책을 펴고 있다. 브라운 총리는 '실력을 갖추지 않으면 세계화에 희생되고, 교육 강국이 돼야 급변하는 국제무대에서 최고가 될 수 있을 것'이라며 교육 투자를 국내총생산(GDP)의 5.6%에서 10%로 늘리겠다고 했다."

-'기회균등할당제'를 어떻게 보나.

"입시에서는 내신 비율을 높여 사교육 혜택을 보는 이들을 유리하게 만들면서, 소외 계층은 정원 외 입학으로 들어오라는 것은 박탈감을 오히려 더 키우는 것 아닌가."

-교육 기회를 넓히는 정책이라는 주장도 있는데.

"교육받을 기회를 균등하게 주는 것은 기본이다. 그러나 교육받고 난 결과까지 균등화시키는 것은 역차별이다. 뛰어난 인재에게는 불만이 될 수 있다."

-'개천에서 용 나기' 위한 정책이라 했는데.

"나도 개천에 있던 미꾸라지다. 과거엔 학교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됐다. 지금은 정부가 내신을 강화하고 있고, (학부모와 학생은) 사교육의 힘으로 내신을 높이려 한다."

-'립서비스'라는 뜻은.

"소외 계층이 정원 외로 입학해도 대학 공부를 따라가지 못하면 더 문제다. 구두적 선언이고 감상주의에 불과하다."

-공교육을 살리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나.

"입시에서 내신 비율을 강제한다고 공교육이 살아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교사를 대폭 증원하고, 능력을 신장할 기회와 적절한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 재정적 투자도 수반돼야 한다. 학부모와 학생들이 공교육과 내신을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권근영 기자

사진

이름

소속기관

생년

[現]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지구환경과학부 교수

1943년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