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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제와 손학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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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정치 역정도 비슷하다. 두 사람은 당 대변인-경기도지사를 거쳤다. 각각 노동부 장관(이인제), 보건복지부 장관(손학규)을 지낸 이력도 닮았다.

 둘의 정치 인생에서 가장 주목되는 공통점이 한나라당을 탈당해 대선 출마를 시도한 행적이다. 이인제는 97년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을 탈당, 국민신당을 창당해 대선에 출마했다. 이후 DJ(김대중 전 대통령) 정권에서 이인제는 여당인 국민회의와 합당했다. 당시 여당은 어려웠다. 정권은 잡았지만 국회에선 무력했다. 각종 입법 시도는 거대 야당인 한나라당의 반대에 부닥쳐 번번이 좌절됐다. 국민회의는 ‘차기 후보’라는 카드를 내보이며 그를 유혹했다. 당시 동교동계 실세들은 이인제에게 “우리 쪽에 후보될 만한 사람이 누가 있느냐. DJ 단일 체제여서 2인자를 키우지 못했다. 어려울 때 도와주면 후보 자리는 떼어 논 당상이다”고 설득했다.

 그가 충청도(충남 논산) 출신이라는 점도 매력이었다. 공동 정권의 다른 한 축이며, 충청권의 맹주인 JP(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 충남 부여)를 견제하는 한편 한나라당을 이끄는 이회창 총재(충남 예산)와도 각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쯤 되니 다목적 카드 이인제를 탐내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이인제 양자 들이기’는 성공했다.

 하지만 피까지 섞인 것은 아니었다. 2002년 대선 후보 경선에서 노무현은 “우리가 야당 하며 고생할 때 여당에서 요직 맡으며 잘 나가지 않았느냐” “군사독재 세력과 야합한 3당 합당 때 YS를 따라간 기회주의자”라고 이인제를 공격했다. 이질적 출신 배경은 경선 내내 꼬리표처럼 그를 따라다니며 괴롭혔다. 호남의 심장인 광주는 결국 노무현의 손을 들어줬다. 이인제는 “어려울 때 그렇게 도와줬는데 나한테 이럴 순 없다”며 오열했지만 엎질러진 물이었다. 이인제는 노무현 후보 탄생의 ‘밀알이자 불쏘시개’였다.

 요즘 범여권의 화두는 손학규다. 두 자릿수에 이르는 범여권 후보 중 그는 부동의 1위다. 한나라당을 탈당(3월 19일)하기 전 손학규에 대한 범여권의 구애는 집요했다. 그의 학생운동ㆍ민주화 투쟁 경력을 들어 ‘한나라당과는 어울리지 않으니 우리에게 오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또 “혼자 힘으로 4~9%의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는데 DJ가 힘을 실어주면 20~30%대를 넘는 건 시간문제”라고 유혹했다.

 범여권은 25일 손학규가 합류를 선언하면서 활기를 띠고 있다. 모터를 돌릴 최소한의 동력마저 잃어 극도로 무기력하던 범여권에 그는 기름을 부어 줬다. 그런데 그의 합류를 독촉하던 범여권엔 서서히 난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손학규의 탈당을 ‘용단’이라고 치켜세우던 사람들도 말이 바뀌고 있다. “어떻게 한나라당을 탈당한 사람을 우리 후보로 세우느냐”는 주장에서부터 “한나라당에 가담했던 과거에 대해 반성해야 한다”는 요구까지 나온다. 우호적 태도를 보이고 있는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조차 “80년 신군부 때 나는 국민 속으로 갔지만 손 전 지사는 영국 옥스퍼드로 공부하러 갔다”는 말을 했다. 선두 주자인 손학규에 대한 공격은 앞으로 더 가혹해질 전망이다.

 과연 손학규가 또 다른 이인제가 될 것인가. 아니면 3당 합당이란 도박으로 정권을 잡은 YS의 길을 갈 것인가. 이를 지켜보는 것도 대선의 관전 포인트다.

이정민 정치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