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지렛대로 미 압력 견제/중,대불 강경조치의 속뜻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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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클린턴 개방정책에 선제공격/궁지에 몰린 외교 반전 포석도
중국의 대서방 외교가 난기류에 휩싸이고 있다.
북경 당국의 프랑스에 대한 보복조치는 지난 81년 네덜란드가 대만에 참수함 2척을 판매한데 대한 보복으로 북경 주재 네덜란드대사를 귀국조치 시킨 이래 서방국가에 취한 가장 강경한 대응조치로 이에 따른 파장이 간단치 않을 전망이다.
중국이 이처럼 프랑스에 대해 초강경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은 외견상 대만 무기판매에 대한 보복성격이 분명하다. 그러나 내면적으로는 미국을 비롯해 영국·독일 등 서방국가들을 겨냥한 것이며,그중에서도 특히 미국에 대한 강력한 경고메시지를 발하는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중국은 F­16전투기 1백50대를 판매키로한 미국에 대해서는 이렇다할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서 프랑스에 대해 유독 보복의 칼날을 들이대고 있다. 이는 대프랑스 관계에서의 경제적 손실을 감수하더라도 중국의 정치·경제를 비롯,대대만과의 관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미국과의 관계에서는 손해를 보지 않겠다는 의도라는 지적이다.
중국 외교부가 24일 이례적으로 『대만에 대한 제3국의 무기판매를 강력히 반대하며 미국의 대대만 전투기 판매문제가 미결상태에 있다』는 성명을 발표하면서도 『대만에 대한 프랑스·미국의 무기판매는 역사적 배경이 다르다』고 미국에 대해서는 한발짝 빼는 모습을 보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중국이 말하는 역사적 배경의 차이란 지난 82년 중미협상때 미국이 일정기간 제한된 물량의 전투기를 대만에 판매할 수 있도록 양국이 양해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대만에 대한 무기판매가 발표된 직후 중국이 미국측에 「협정위반」이라며 강력 반발한 사실로 미뤄 이는 어디까지나 외교적 명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서방측의 시각이다.
중국은 대미무역에서 연간 1백50억달러의 엄청난 무역흑자를 내기 시작하면서 미국으로부터 시장개방 압력을 받아온게 사실이다. 특히 민주당의 빌 클린턴대통령당선자가 조지 부시 행정부가 미온적 태도를 취해왔던 인권문제와 제3국에 대한 무기판매 등을 강력히 거론함으로써 중국은 최대시장인 미국에서의 타격을 심각히 우려해왔다.
미국시장에서의 타격은 중국경제에 심대한 타격을 미칠 수 밖에 없고,이 경우 중국이 국가의 사활을 걸고 추진하고 있는 개혁·개방정책이 근본적으로 위협받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국은 프랑스에 대한 보복조치를 지렛대로 활용,미국측이 중국의 시장개방을 위해 압력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는 인권문제나 무기판매 카드를 상쇄시킴으로써 머지않아 가시화될 미국과의 무역마찰에서 중국측의 이해를 최대한 보호하겠다는 계산을 깔고있다는 분석이다. 중국의 이번 조치는 다른 한편으로 잇따라 발생하고 있는 서방국들과의 외교적 마찰로 궁지에 몰려있는 대서방 외교를 반전시켜 보려는 측면도 있다.
홍콩의 민주화 개혁조치를 둘러싸고 영국과 원색적인 용어를 사용하며 외교적 공방전을 벌이고 있음에도 별다른 상황진전이 이뤄지지 않고 있고,미국과의 관계는 클린턴의 계속되는 강경발언으로 위축돼 있는 상황이다. 뿐만 아니라 미국·프랑스의 대만 무기판매에 자극을 받아 네덜란드가 보류중이던 잠수함의 대만판매를 재검토하기 시작함으로써 89년 천안문사태 이래 최대의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중국으로서는 서방국가들의 연쇄적인 대중국 방해공작을 그대로 방치할 경우 자칫 우려할만한 사태로 발전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듯 하다. 따라서 차제에 이번 조치로 서방국들에 중국의 강력한 의지를 분명히 하는 한편 궁지에 몰려있는 외교적 국면을 타개하겠다는 포석이라 할 수 있다. 아무튼 중국은 『병아리를 죽여 원숭이를 놀라게 한다』는 중국 속담을 원용한 대서방 경고메시지를 발하고 있지만 국제사회에 상당한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이란 전망이다.<문일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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