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대통령(성병욱칼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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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김영삼대통령당선자는 선거과정에서 신세진 데가 별로 없다. 따라서 대통령직을 수행함에 있어 어느 때보다 부담이 적고 자유스런 입장이다.
김 당선자는 현직 대통령에게도 별로 신세를 지지 않았다. 지난 87년 선거 때는 당시 대통령이 차기대통령을 만드는 킹메이커 역할을 철저히 수행했다. 선거자금의 대부분을 모아주고,행정조직을 총동원해 선거를 지원했다. 그렇기 때문에 퇴임후에도 영향력을 남길 생각을 할 수 있었고,그로 인해 불화를 빚었지만 이번에는 그런 것이 없었다.
○신세 안지고 치른 선거
노태우대통령은 공정한 선거관리란 명분으로 민자당을 탈당해 중립내각을 출범시켰다. 도와주고 도움을 받고 싶어도 그럴 수 없도록 제도적 장치와 분위기가 마련되었다. 그러다 보니 김 당선자는 관료조직에도 신세를 지지 않았다.
이로 인해 오랜 집권경험으로 관의 도움에 의존하던 민정계 쪽에선 동요가 컸던게 사실이다. 대통령의 탈당→박태준최고위원의 전례이탈→몇몇 소속의원들의 탈당이란 사태가 겹쳐 민자당 조직도 선거에서 효율성을 발휘하지 못했다. 87년 선거때 정부·여당과 관변조직이 똘똘 뭉쳐 효율적인 선거운동을 했던데 비해 이번 선거에서의 민자당 역할은 밖에서 봐도 엉성하기 짝이 없었다. 김 당선자는 당조직에도 크게 신세를 지지 않은 것이다.
이번 선거과정에서도 적지 않은 선거자금이 동원됐고 투입됐기 때문에 그도 기업으로부터는 어느 정도 도움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과 행정조직이 중립적이었으므로 선거자금을 모으는 과정에서 구체적 이권이 관여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업에도 신세를 덜 졌다고 볼 수 있다.
지난 40년간 선거에서 가장 핵심적 집권프리미엄은 관권과 금권인데 이번 선거는 그 집권프리미엄을 반납한 선거였다. 관권은 공식적으로 반납했고,금권은 제1당의 능력이 상대적으로 무색해 보일 정도였다. 이러한 것들이 바로 새 대통령 당선자가 집권의 정통성을 확고히 하고,경쟁자들의 승복을 받아낼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반대편 사람도 기용을
당선자가 다른데 신세진게 별로 없는 것은 국민에게만 크게 신세를 졌다는 얘기가 된다. 소금 먹은 사람이 물 켠다고 신세를 지게 되면 아무리 작은 의리에서 벗어나려고 해도 그것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다행히 김 당선자는 국민 외에는 크게 신세진데가 없으니 자유스런 입장에서 국민만을 의식하고 국가경영을 하는 대통령이 될 절호의 기반을 갖춘 셈이다.
우선 가장 중요한게 틀에 매이지 않고 널리 인재를 모으는 일이다. 그는 정치인으로서 야당의 요직과 여야의 지도자를 역임하는 남다른 경험은 지녔지만 행정을 관리하고 국가를 경영해본 경험은 없다. 또 국가를 경영함에 있어 제기될 여러 문제에 대해 나름의 논리가 정리되어 있는 사람도 아니다. 그의 주변에도 정치투쟁에 능한 사람은 많지만 국가 경영·관리에 경험을 지닌 사람은 많지 않다.
그는 이런 문제점이 제기될 때마다 대통령이 모든 것을 알 필요는 없고,그런 문제들을 잘 다룰 사람들을 쓰면 된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김 당선자에게 있어 인사는 그의 말마따나 「만사」이며,지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 스스로도 자신의 강점과 익점을 꿰뚫어 보고 있을 것이다.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선 국가경영의 여러 부문에서 전문적 지식과 능력을 지닌 사람들이 필요하다.
자기를 지지했던 주변사람에 머무르지 말고 지지에 소극적이었거나,심지어 반대편에 섰던 사람중에서도 광범하게 새롭고 참신한 인재를 구해야할 것이다. 특히 다시 무거운 부담으로 확인된 지역감정의 해소를 위해 인재 충원 과정에서 특별한 배려가 요구된다.
김 당선자가 유신체제 아래에서 지난 74년 첫번째로 야당총재가 되었을때 직계의원은 초·재선 4명 뿐이었다. 그는 경선 과정에서 자기편에 서지 않았던 사람만으로 3당역 등 주요 간부를 기용했다. 이번에도 인재기용에 있어 인사쇄신 차원에서 그 이상의 파격이 기대된다.
김 당선자는 줄곧 국민을 의식하고 여론을 존중하는 정치를 하려고 애쓴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의 승리는 그가 내건 「안정속의 개혁」을 국민이 지지했다는 얘기가 된다. 「안정속의 개혁」중 안정쪽에 무게를 더 둔 사람도 있고,오랜 세월 야당을 했던 그의 민주개혁론자로서의 이미지에 더 기대를 건 사람도 있다.
○개혁추진 집권 초기에
그러나 안정은 개혁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요,기반일뿐 그 자체가 목적일 수는 없다. 대통령이 신세진데가 많으면 걸리는 데가 많아 개혁하기가 어렵다. 신세진 데가 적은 김 당선자는 그런 부담에서 자유스럽다. 부담이 없는 집권초기에 우리나라가 한단계 더 발전·성숙하는데 필요한 개혁에 자유롭기를 기대한다.<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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