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임·도청 모두 철저수사를(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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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부산지역 기관장모임」 사건은 그 도청경위가 상세히 드러남으로 인해 다시 세간의 이목을 모으고 있다. 짐작되었던대로 도청은 정보기관원의 제보에 따라 현대와 국민당쪽이 치밀하게 계획해서 이루어진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도청의 경위와 상세한 내용은 수사극처럼 흥미로울 수 있으며 또 현행법상의 저촉여부를 떠나 도청의 부도덕성만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이다. 그러나 이 사건이 단순한 흥미거리가 되거나 수사의 비중을 도청쪽에 더 두는 것은 옳지 않다. 「기관장 모임」 사건이 크게 문제됐던 것은 과거 관계기관대책회의의 고정멤버였던 기관장들이 한명도 빠짐없이 한 자리에 모였다는 점과 그들이 한 발언의 내용 때문이었다.
이번 사건의 주역인 김기춘 전법무부장관은 그 모임이 『그동안 성원해준 고향의 기관장들과 지역유지께 감사의 인사』를 하려고 마련한 자리였고 모인 사람들은 『퇴임을 위로하고자 얼굴이라도 보자는 뜻』에서 만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영환 전부산시장은 『김 전장관이 고생하는 기관장과 식사나 한번 하자고 한다』는 말을 정경식검사장으로부터 전해 듣고 모임을 주선했다고 검찰에서 진술했다. 같은 피의자인 김 전부산시장의 진술에 비추어 보아도 김 전장관의 설명은 설득력이 약하다.
또한 공개된 발언은 지역감정의 자극과 언론인 및 택시기사의 매수,편파수사의 유도 등 사실상의 관계기관대책회의라고 생각될 수 있을 정도로 특정인의 당선을 위한 내용으로 일관했다. 아울러 결과적으로도 선거에 적지않은 영향을 미쳤다.
검찰의 정신적 부담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 대한 검찰의 자세는 검찰 전체의 명예는 물론 중립내각의 공정성,더 나아가서는 당선자의 도덕성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뚜렷이 인식해야 한다.
당연히 도청문제에 대해서도 엄정한 수사가 있어야 한다. 모임내용의 폭로가 공직책임자들의 의식세계를 파악할 수 있게 해주었다는 점,앞으로의 관권개입을 막는 사회분위기를 조성해 주었다는 점에서 뜻이 없는 것은 아니나 역시 도청은 부도덕한 행위다. 우리는 민주적 가치는 목적의 정당성만이 아니라 수단의 정당성도 요구한다는 점에서 현행 실정법이 어떠하건 도청의 경위와 금품수수 내용이 낱낱이 밝혀져 국민의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하나 짚고 넘어가야할 것은 모임의 제보자가 국가정보기관인 안기부 직원이었다는 점이다. 비밀을 생명으로 하는 정보기구의 직원이 돈과 사사로운 인연에 이렇게 쉽게 넘어갔다는건 예사롭게 넘길 일이 아니다. 공직기강의 해이와 직업윤리의 타락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선거에서의 승리를 위해 그런 타락을 받아드리고 이용하기까지 한 현대와 국민당측의 부도덕 또한 함께 비판받아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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