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노인·정신장애인, 아름다운 '동병상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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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청주시 흥덕구 미평동에 자리잡은 참사랑 병원.

60여명의 치매 환자들이 치료를 받고 있는 이 병원 노인병동에는 환자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는 여성이 있다. 간병인 역할을 하고 있는 김미경(20)씨다.

金씨는 3급 정신지체장애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환자는 金씨를 친손녀처럼 아끼고 귀여워한다. 金씨가 얼굴 한번 찡그리지 않고 이들의 손발이 돼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치매 환자들의 식사를 도와주는 것은 물론이고 침실 청소에서부터 환자가 이동할 때 부축하는 일, 빨래 돕기 등 궂은일을 도맡아 한다. 노인 환자들의 '놀이 치료'프로그램에도 함께 참여한다.

"힘들지 않으냐"는 질문에 金씨는 "할머니들과 같이 있는 게 너무 재미있다"며 밝게 웃는다.

짜증이 많기로 유명한 조모(73)할머니도 그녀가 곁에 있을 땐 얼굴이 환해진다.

이에 대해 이 병원 최정봉 이사장은 "순수한 사람끼리는 원래 통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金씨가 이들의 간병을 맡게 된 것은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 충북지사의 정신지체장애인 대상 고용 프로그램이 계기가 됐다. 지난해 도입된 이 프로그램은 취업이 거의 불가능한 정신지체장애인들을 일정 기간 교육시킨 뒤 치매 노인들의 간병인으로 채용하는 것이다. 간병인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려운 요즘 '누이 좋고 매부 좋고'식 취업 지원책인 셈이다.

공단 측은 이를 위해 현장에 적응할 수 있는 장애인들을 선발해 3주간의 교육도 시켰다. 이들은 모두 정신지체 3급 장애인으로 통근길 익히기.기본 예절.직무 등에 대한 반복훈련을 받았다. 3급 장애인의 경우 초보적인 언어 표현 및 학습 능력을 갖추고 있어 잘 짜인 훈련을 받을 경우 단순노동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프로그램을 거쳐 현재 충북지역에서 간병인으로 취업한 장애인은 참사랑 병원 5명과 충북 청원군 초정노인병원 12명 등 모두 17명이다. 이들은 오전 8시30분 출근해 오후 5시까지 근무하며 57만원의 월급을 받는다. 이 병원 박종림(45.여)간호과장은 "정상인이라면 단순하고 반복적인 일에 싫증을 내고 요령도 피우겠지만, 이들은 가르쳐준 대로 일을 너무 잘 해 선입견을 가졌던 게 부끄러웠다"며 "이들에게서 순수함을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병원 측은 당초 이들이 말썽을 부릴 것을 우려하기도 했으나 현재까지 별다른 사고가 없었다고 밝혔다. 다만 긴급대처 능력이 일반인에 비해 다소 떨어져 1대1로 환자를 장시간 맡기는 일만은 피하고 있다는 것이다.

청주=안남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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