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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TV 갈등, 상호 윈윈으로 풀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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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산업사회에선 뒤졌지만 정보화사회에서는 앞서가자.’

1990년대 초 한국 엘리트 집단과 기관, 주요 언론 매체가 벌인 캠페인 슬로건이다. 한국이 21세기 정보화 사회를 앞당겨 태평양 시대를 선도하자는 야심찬 목표가 담겨 있었다. 그후 정부·학계·업계의 노력으로 한국은 글로벌 리더로 성장했다.
 
그러나 벌써 한국 정보기술(IT) 산업에 위기가 찾아왔다는 우려가 높다. 지난 10년간 국내 IT산업은 15% 이상 성장세였지만 최근 5년간 경제성장률은 연평균 5.2%, 실질소득 증가율은 3.4%에 그쳤다. 더 우려되는 현상은 정부 리더십 상실과 업계의 분열·갈등이 IT 기술과 산업발전을 가로막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IPTV다.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인 초고속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IPTV를 어느 나라보다 앞서 도입할 수 있는 기술적·사업적 여건을 갖추고 있지만 몇 년째 논의만 무성하다.
 
지난주 제주도에서 열린 KCTA(한국케이블TV방송협회 전시회 및 콘퍼런스)에 참석한 전 유럽부흥개발은행(EBRD) 총재였던 자크 아탈리 플래닛파이낸스 회장은 “미래의 미디어는 IPTV와 케이블TV가 융합한다”고 예측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아니 세계에서 선두를 달리는 한국 IT 능력을 볼 때 각 주체들의 지혜로운 결정만 갖춰진다면 IPTV와 케이블TV 융합은 빨리 실현될 수 있다.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한 국가의 역할은 산업 내의 혁신적 기술·서비스를 과감히 수용해 창조적 파괴를 선도하면서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것이다. 이미 IPTV가 실행 중인 일본은 총무성 주도 아래 IPTV산업과 디지털 지상파 방송업계가 상호 발전할 수 있는 방안까지 모색하고 있다. 2011년 7월 디지털 전환을 앞두고 디지털 난시청 지역의 디지털방송 수신 체제를 조기 구축하기 위해 지난해 말 IPTV 지상파 재전송 서비스를 허용했다. IT 산업과 디지털 콘텐트 산업을 미래 국가 성장동력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IT산업과 디지털 콘텐트의 중요성은 일본보다 우리가 더하다. 하지만 리더십을 상실한 우리 정부는 업계 눈치만 살피면서 몇 년째 IPTV 정책에서 손을 놓고 있다.

늦은 감이 있지만 우리도 이른 시일 내에 IPTV 관련 법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서비스가 활성화되면 새로운 고성장 산업으로 급부상하는 콘텐트 산업 육성에도, 침체된 IT산업에도 기폭제 역할을 기대할 수 있다. 소비자들도 초고속 정보통신망을 통해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영상콘텐트를 쌍방향으로 시청할 수 있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에서의 시청자 주권 행사가 가능해진다. 디지털 전환을 통해 새로운 도약을 꿈꾸고 있는 방송계 역시 IPTV라는 새로운 통신계 미디어 등장을 통해 조기에 디지털로 전환할 수 있고, 상호 서비스 보완 및 강화를 통해 상호 윈윈하는 긍정적 계기로 삼을 수 있다.

황상재 한양대 교수·신문방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