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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앞두고 드러난 군병폐/알자회파문/군수사부정(추적 ’92:9)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2면

◎“있을 수 있는 일” 군내부 인식이 문제/“정권교체기 따른 누수현상” 시각도
92년은 국방부 최악의 한해였다.
이지문중위의 군부재자투표 부정 폭로를 시발로 정보사땅 사기사건,국군통신사 대리투표사건,군수사폐장비 부정유출 및 뇌물수사사건 등이 꼬리를 물고 터져나오더니 급기야 육사출신 젊은 장교들의 사조직인 알자회가 결성 16년만에 언론에 처음으로 공개돼 군 안팎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특히 알자회와 군수사사건의 경우 대선을 한달 남짓 앞두고 거의 동시에 불거져 이것이 장기화될 경우 자칫 선거정국에 결정적 악영향을 미칠 위험성마저 내포하고 있어 군수뇌부를 잔뜩 긴장케 했다.
알자회에 대해서는 청와대 경호실·수방사·육대교관·육사훈육관 등 주요 보직자 20명을 야전으로 전보조치한데 이어 나머지 관련장교 1백여명도 특별 인사관리 대상으로 분류,인사상 불이익을 주겠다는 선에서 일단 마무리했으며 군수사 사건은 전·현직 중앙수집근무대장 신치동·김영이중령 등 7명의 사건관련자들을 구속하고 지휘책임으로 배일성사령관(중장·육사18기)을 11월24일자 보직해임 함으로써 일단 급한 불길은 잡았다. 육군은 또 군수사 부정사건과 관련,육본군수참모부장(소장)을 위원장으로 「폐장비처리위원회」를 편성,폐장비 판정기준·계약 및 불하절차 등 구조적 모순을 개선해 나가겠다고 약속했다.
알자회는 육사34기(중령급)생들이 생도3년 시절이던 76년 처음 결성,그후 10년가량 후배들에게 대물림하면서 세를 확장해온 육군내 신흥 사조직으로 86년말 군수사기관의 된서리를 맞고난 이후 사실상 잠복기에 들어갔었다. 그러나 당시 이 조직은 철저한 대외비로 분류돼 군내부에서조차 잘 알려지지 않았었다.
그러던 알자회가 7년여의 공백을 깨고 비로소 이번에 노출된 것은 육사38기출신 소령 두명이 요직을 놓고 경합을 벌이던중 갑자기 나타난 제3의 「알짜」가 유력시되자 이에 동기생들이 집단으로 반발하면서부터.
군수사사건 역시 육본범죄수사단이 9월 이들의 범행사실을 최초로 인지,내사를 벌였으나 이 사건에 관할 헌병 및 기무대원 등이 깊숙이 개입돼 있음에도 당국이 이를 고의적으로 축소·은폐했다는 새로운 제보에 따라 전면 재수사에 나섬으로써 비롯된 것.
이들 두 사건은 특히 군의 기강문제와 관련,심각성을 더욱 증폭시켰다. 따라서 이같은 사건발생을 정권교체기 레임덕 현상으로 보는 시각도 제기됐다. 그런가 하면 이와 유사한 사건이 과거에도 있어왔음을 지적,은폐하기보다는 공개하는 쪽이 오히려 문제해결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를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경향도 없지 않았다. 이들 두 사건을 보는 시각은 민군간에도 크게 달랐다.
「알자회」는 젊은 장교들의 친목모임으로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며,「군수사」 역시 전형적인 군용물 횡령범죄로 새삼 놀라울게 없다는게 군의 대체적인 시각이었다.
이같은 인식은 그동안 보편화돼 왔던 각종 군내 부조리로 인해 군의 도덕적 판단기준이 무뎌진데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김진영육참총장은 11월18일자 특별지휘서신을 통해 알자회 관련장교는 회개를,다른 장교들에게는 관용을 베풀토록 지시했다. 이는 최근 심각하게 확산되고 있는 군의 인력난을 의식한 고육책의 하나로 보였다. 본격 선거전을 눈앞에 둔 시점에서 급한대로 응급처치는 해놓았지만 환부는 아직 아물지 않고 있다. 몇가지 외과적인 처방만으로 유사한 형태의 사건이 근절되리라는 기대는 하기 어렵다.
그동안 군내 각종 비리는 군사정부의 보호아래 암암리에 묵인될 수 있었으나 앞으로 민간우위 정치체제하에서는 결코 용납될 수 없을 것이라는게 지배적인 관측이다.
이들 두 사건은 전환기에 처한 군의 구조적인 병폐가 어디에 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이었다.<김준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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