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창기배」그 뒷 얘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제2기 응씨배」준결승전에 얽힌 얘기를 좀더 해야겠다. 조치훈9단-서봉수9단, 대죽영웅9단-예내위9단의 대국 때 주최측과 한일 두 나라 관계자들 사이에 눈에 보이지 않는 첨예한 대립이 있었으니 그것은 서로 자국에서 결승전을 치르려 함이었다.
우리나라로 결승전을 끌어오기 위해서는 서9단이 승리해야만 하고, 주최측은 예9단이 승리해야만 대북·상해에서 개최할 명분을 찾을 수 있으며, 일본측은 한술 더 떠 대죽9단· 조9단이 모두 이겨 결승 5번 승부를 몽땅 일본에서 갖기를 바라고 있었다.
님도 보고 뽕도 따는 격으로 적지 않은 액수의 주관료까지 챙기자는「경제 동물적」노림수가 번뜩이는 욕심 사나운 발상이라 할까.
조9단이 서울대표로 출전한 한국인이긴 하지만 그의 활동무대가 일본이며 일본기원 소속 기사라는 점을 들어 조· 대죽이 결승에서 맞붙을 경우 일본 개최가 당연하다는 논리였다.
우리도 그렇지만 주최측도 일본 개최는 꺼리는 입장.
물가가 워낙 비싸 비용이 배로 드는 데다 일본 사람들의 손님 접대가 너무 사무적이기 때문이다. 응창기씨를 비롯한 주최측의 모든 인사들은 예9단의 승리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응창기씨는 고향(상해)사람이어서 그런지 예9단을 친손녀처럼 아끼는 눈치였다.
한편 서9단은 제1국에서 한집을 지고 나서 『일생일대』의 큰 승부이다 보니 지나치게 긴장해 소극적으로 두었다.
제2국에서는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과감히 둘 생각』이라고 심경을 털어놓았는데 과연 1패 후 2승의 역전 극을 연출했다.
극심한 긴장감이 장출혈을 일으켜 대변에 피가 섞여 나오는 극한상황이었지만 원래 약을 먹지 않는 서9단은 정신력으로 극복하는 처절한 모습이었다.
제3국 때는 하루종일 물만 마셨을 정도다.
예9단은 제1국 불계패, 제2국 불계승, 제3국 불계패라는 기복이 심한 내용으로 탈락함으로써 신데렐라의 꿈이 깨지고 말았다.
설상가상으로 예9단에겐 불길한 조짐도 있었다. 미국에서 미리 오기로 한 남편 강주구9단이 급환·항공사사정 등으로 제2국이 끝나고서야 나타나는 등 잔뜩 불안하게 했으며 전야제의 임전태세 피력을 『대죽 선배에게 한판만 건져도 저로서는 대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라고 해서 서9단이 『겸손도 좋지만 큰 시합을 앞두고 저런 기죽은 소리는 실수입니다』라고 지적했는데 결과적으로 한판만 건진 꼴이어서 「말이 씨 된다」는 우리 속담대로 되고 말았다.
칠월칠석날의 견우직녀처럼 반가운 해후를 한두 젊은 부부에겐 이번 기회가 이를테면 신혼여행인 셈인데 예9단이 이겼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