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해부] 3년 정치침묵 깨고, 7월께 마음속 走者 밀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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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의 정치적 침묵이 길어지고 있다. 동선도 제한적이고 조용한 편이다. 정치적 빅 이벤트인 오는 12월 대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JP는 충청권에서 여전히 정치적 상징 인물이다. JP를 등에 업으려는 각 정파의 움직임이 조만간 긴박해질 전망이다.



■ 지난 1월 자민련 창당 기념 모임 참석… 요즘은 근황조차 노출 안 돼
■ “흐트러진 사회 바로잡을 후보 골라 전국 돌며 적극 지원하겠다”
■ 대선의 정치적 의미 잘 알아… 심대평 국중당 대표 ‘대선 출마’ 훈수설도

올 대선을 앞두고 김대중(DJ)·김영삼(YS) 두 전직 대통령의 정치적 발언이 차츰 늘어나고 있다. 정치 일선에서는 물러났지만 호남과 영남, 범여권과 한나라당에 여전히 영향력을 지닌 그들이다. 따라서 이들의 행보는 오는 12월의 대선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정치권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김종필(JP) 전 자민련 총재는 ‘침묵’의 연속이다. 분명 ‘3김’의 한 축임에도 좀처럼 입을 열지 않고 있다. 때문에 올 대선에 대한 그의 속내를 짐작하기는 무척 어렵다.

‘천하를 얻으려면 중원을 경영하라’는 말처럼 올 대선에서 충청권의 역할과 표심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상황이다. 그런데도 수십 년 동안 충청권 맹주 역할을 한 JP가 이처럼 장기간 말문을 닫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JP의 정치발언 파악은 쉽지 않다. 동선이 제한적이고 조용하기 때문이다. 정치 현안에 대한 별다른 언급이 없기에 기자들도 잘 찾지 않는다. 이따금 전 자민련 소속이었던 정치권 인사들을 비롯, 지인들과 만남을 갖기는 한다. 하지만 공식적인 것이 아니기에 별반 관심을 끌지 못한다.

언론 노출 빈도가 뜸하다 보니 잊힌 인물로 치부되는 경향이 강하다. 지난 5월 5·16민족상 시상식장에 모습을 나타냈지만 정치적 언사는 없었다. 5월20~23일 이상득 국회부의장, 국민중심당 정진석 의원 등과 함께 중국 선양(瀋陽)을 방문해 ‘한국주간행사’에 참석했지만 마찬가지였다.

01. 긴 침묵이 남긴 궁금증
- "이미 정치를 떠난 분이다. 만나봐야 할 말이 없으시다" 전언 반복

올 들어 JP가 뉴스를 장식했던 것은 지난 1월25일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와 이른바 ‘120만 원짜리 식사’를 하고 나서였다. 주인공도 JP가 아니라 연초 성(性) 관련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켰던 강 대표였다. 이 자리에서 강 대표는 JP에게 한나라당 후보 지원을 요청했다. 이에 대해 JP는 한나라당 대선 후보가 확정되면 전국을 돌겠다고 화답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지만 이마저 거액의 식사 논란에 묻혀 주목받지 못했다.

이보다 10일 전인 1월15일 JP는 충남 연기의 한 골프장에서 골프를 치고 대전을 찾았다. JP는 매년 자민련 창당(1995년 5월30일) 기념일을 전후해 대전을 찾아 지인들과 만남을 갖고는 했다.

이날 대전 방문도 의례적 성격이었다. 유성의 한 음식점에서 가진 저녁 식사 자리에는 대전지역 전현직 언론사 사장 등 7~8명이 동석했다. 그러나 정치권 인사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이날 10여 명의 기자가 음식점으로 JP를 찾아 나섰다. 혹시 무게 있는 기삿거리가 나오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두세 시간을 기다리며 접촉을 시도했다. 하지만 JP는 한사코 만남을 고사했다. 수행비서가 나와 “이미 정치를 떠난 분이다. 만나봐야 할 말이 없으시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이미 정치와 선을 그었다는 JP의 언급에도 기자들이 그를 만나려 했던 데는 이유가 있었다. 바로 JP의 정치 후계자를 자임하는 심대평 국민중심당 대표가 4·25 대전서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를 선언(1월10일)한 직후였기 때문이다. 또 자민련의 발전적 해체를 통해 거듭난다며 출범한 국민중심당의 창당 1주년 기념식도 1월17일 예정돼 있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JP가 심 대표에게 국민중심당에 대해 어떤 언급을 하느냐는 관심을 끌 수밖에 없었다. 심 대표는 자민련 소속으로 민선 충남도지사를 세 번이나 내리 역임하고 부총재까지 지냈다.

그가 비록 중간에 탈당(2005년 8월)해 이듬해 국민중심당을 창당했으나 자민련의 정치적 부채와 자산을 이어갈 것임을 천명한 바 있다. 더욱이 이날 저녁 모임에 앞서 심 대표는 골프장에서 전직 언론인들과 골프를 즐기는 JP를 찾아 창당 기념식 참석을 요청했던 것으로 전해지기도 했다.

02. 7월쯤 지지 주자 결정
- 전국 돌며 적극지원하겠다… 한나라당 주자로 기운듯

기자들은 JP를 만나지 못했다. 하지만 헛수고를 한 것은 아니었다. 이날 그와 골프와 저녁을 함께했던 한 인사로부터 올 대선과 관련해 JP의 의중을 짐작할 수 있는 귀동냥을 할 수 있었다.

이 인사는 “김종필 전 총재는 대선 후보를 면밀히 살펴보다 오는 7월쯤 지지 후보를 결정해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현재 6∼7명의 대선 후보가 돌아다니고 있으나 아직 평가하기에는 이른 것 같다. 누가 흐트러진 사회를 바로잡고 우리나라를 이끌어갈 후보인지 7월쯤 판단해 전국을 돌며 적극 지원하겠다는 말도 했다”고 덧붙였다.

JP의 이 같은 언급은 당시에는 한나라당 경선이 6월로 예정돼 있었기 때문에 지지 후보가 한나라당 후보를 말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낳았다. JP의 말을 전한 이 참석자도 어감으로 볼 때 지지 후보는 한나라당 후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이런 분위기는 열흘 뒤 ‘120만 원짜리 식사’ 자리에서 재확인되기에 이른다.

해프닝도 있었다. 이 참석자는 이날 오전 골프장으로 찾아온 심대평 대표가 JP에게 국민중심당 창당 기념일 참석을 요청하자 JP가 흔쾌히 수락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 같은 전언이 다음 날인 1월16일 보도되자 JP 측근은 일부 신문사에 전화를 걸어 참석을 수락했다는 말은 와전된 것이라고 항의를 했다. 왜 있지도 않은 말을 만들어 곤혹스럽게 하느냐는 것이었다. 물론 17일 대전 오페라웨딩홀에서 열린 국중당 창당 기념식에서 JP의 모습은 찾아 볼 수 없었다.

03.국민중심당과 함께
- 진로나 역활에 가타부타 말 없어… 대선 위한 세력 결집 필요성 인식

JP는 국민중심당과는 어떤 관계일까? 또 심대평 대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할까?
JP는 2004년 4·15총선에서 자민련이 4석만 차지하는 참패를 당하자 곧바로 김학원(한나라당 전국위원회 의장) 의원에게 대표직을 넘겼다. 이때부터 JP는 눈에 띄게 정치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이어 국민중심당 창당과 자민련 해체가 이어지면서 충청권에 대한 발길도 뚝 끊었다.

자민련의 뒤를 이어 충청권을 기반으로 하는 국민중심당이지만 진로나 역할에 대해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심지어 스스로 JP의 정치적 후계자라고 일컫는 심대평 대표가 4·25보선에 나섰지만 의례적 덕담 한마디 없었다. 이 정도면 JP가 정치와 완전히 인연을 끊은 것처럼 보일 만했다.

그러나 JP가 국민중심당이나 심대평 대표에게 완전히 등을 돌렸다고 보기는 어렵다. 국민중심당 5명의 의원 가운데 류근찬·김낙성 의원은 17대 총선에서 자민련으로 당선됐다. 정진석 의원은 JP를 통해 정치권에 입문했고, 자민련 시절 대변인도 지냈다. 그만큼 JP의 복심을 읽을 수 있는 사람으로 꼽힌다. 조부영 전 의원을 포함해 바로 이들이 JP와 국민중심당을 이어주는 끈이다.

이 가운데 정진석 의원과 조부영 전 의원은 지난 5월20일부터 23일까지 중국 선양에서 열린 ‘한국주간행사’에 JP와 함께 다녀왔다. 공교롭게도 이 행사에는 한나라당 소속 이상득 국회부의장도 참석했다.

이상득 부의장은 한나라당 유력 대선 주자 가운데 한 명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친형이다. 관심을 끄는 방문이었지만 서로 초청한 팀이 달라 대면했으면서도 속 깊은 이야기는 오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에서 귀국한 JP는 지난 5월 말 정진석 의원, 조부영 전 의원과 저녁 식사를 함께했다. JP는 이 자리에서 신민주공화당 창당과 1987년 대선 출마를 회상하면서 “모두 (정치 재개가) 성공하지 못한다고 했을 때 대선에 출마함으로써 성과를 얻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10여 년에 걸친 자민련의 성쇠에 대해 언급하면서 1997년 ‘DJP연합’과 2002년의 대선 불출마가 자민련의 몰락을 가져왔다는 점을 지적했다고 한다.

“충청권 움직여야 대선 이긴다”

그러면서 국민중심당 심대평 대표에 대해서는 이번 대선에 출마해야 할 것이라는 훈수를 했다는 것이다. 자신의 대선 불출마와 자민련의 해체를 빗대 국중당과 심 대표가 나아가야 할 좌표를 설정해준 셈이다.

그 자리에 동석했던 정진석 의원은 지난 6월11일 서울 주재 충청권 기자들과 간담회를 하면서 그날의 분위기를 전했다.

“JP는 1987년 대선을 언급하면서 당선 가능성이 작았음에도 출마를 강행한 것은 영·호남 패권주의를 극복하기 위함이었고, 충청권의 세력 결집을 위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정치공학적 필요성을 느꼈다는 것이다. 그 결과 다음해 치러진 13대 총선에서 신민주공화당은 33석을 얻었고, 작지만 강한 정당을 만들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국민중심당의 진로에 대한 언급도 이런 과정에서 나온 것으로 풀이된다. 정 의원은 또 “JP는 DJ가 현실정치에 간여하고 개입하는 것에 대해서는 옳지 않다고 했다. 물론 좌파 정권의 연장을 좌시하지 않겠다고도 했지만, 그렇다고 JP가 일선에 나서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내가 보기에는 (JP는) 중립적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정황을 놓고 보면 JP는 의식적으로 정치와 담을 쌓는 것처럼 여겨진다. 국중당과 심대평 대표에 대한 언급도 의례적 ‘립서비스’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는 한나라당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이번 대선에서 한나라당 후보를 지원하겠다는 의사표시는 여전히 유효할지 모르지만 아직 움직임은 감지되지 않는다.

04. '충청 파워'는 계속된다
- '호남+충청'의 '서부 벨트' 중심… 한나라당도 무시 못해

충청권에 대한 정치권의 구애는 대통령선거일이 다가올수록 집요해질 전망이다. 대통령선거에서 충청권이 차지하는 지정학적 중요성은 이미 15대, 16대 대선에서 입증됐다. 15대 대선에서는 이른바 ‘DJP연합’을 통해 국민회의 김대중 후보가 신한국당 이회창 후보를 누르고 승리했다.

두 후보 간 표차는 39만557표로 박빙의 승부였지만 충청권에서 김 후보는 이 후보보다 40만8,319표를 더 얻었다. 이 후보가 충청권 연고론을 앞세웠지만 표심은 JP를 등에 업은 DJ에게 향했다. JP의 영향력이 극대화한 선거였고, 충청권이 승부를 갈랐다는 분석이 나온 배경이다.

16대 대선에서도 민주당 노무현 후보와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표차는 57만980표에 불과했다. 노 후보는 충청권에서 이 후보보다 25만6,286표를 더 얻었다. 충청권 연고의 이 후보가 행정수도 이전 공약을 내세운 노 후보에게 충청표를 빼앗겨 패배했다는 분석이 그래서 유력했다.

한나라당에서는 이번에도 충청권 민심을 얻지 못하면 대선 승리가 어렵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돌고 있다. 당내 유력 주자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나 박근혜 전 대표가 경선 이전부터 공을 들여온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범여권도 충청권을 의식하기는 마찬가지다. 여러 갈래로 분화돼 있지만, 대통합을 염두에 두고 있는 범여권도 본선에서 충청권을 놓칠 수 없다는 절박감이 있다. 대통합세력이 염원하는 ‘호남+충청’의 ‘서부 벨트’ 구축의 중심도 충청권이다.

그렇다면 한나라당이 됐든, 범여권이 됐든 충청권 민심을 얻기 위해 구체적인 행동을 할 수밖에 없다. 그 핵심은 충청을 대표하는 정치세력, 충청 정서를 움직일 수 있는 인물을 붙잡는 것이다.

현재로서는 한나라당은 당내 경선의 회오리에 휩싸여 있고, 범여권은 통합 작업으로 여력이 없다. 하지만 후보가 결정되면 곧바로 충청권 공략에 나설 수밖에 없다. 국민중심당이나 JP가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국민중심당은 지난해 5·31 지방선거 참패로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다 지난 4·25보선에서 심대평 대표의 당선으로 아연 활기를 되찾았다. 권선택 의원도 입당했다. 의석은 5석에 불과하지만 충청을 기반으로 하다 보니 대선 국면에서 역할을 할 수 있는 토대는 마련된 것으로 보인다. 몸값을 올릴 호기를 맞이한 셈이다.

그러나 진로가 문제다. 국민중심당의 진로는 네 갈래다. 심 대표가 누차 언급한 대로 독자 노선을 걸으면서 대선에 후보를 내거나, 후보를 내지 않고 지켜보는 길이 있다. 또 한가지는 한나라당과 연대하거나 범여권 통합에 참여하는 길이다. 현재로서는 선택의 갈림길에서 고민이 덜하지만 대통령선거일이 다가올수록 선택을 강요당할 공산이 크다.

JP의 충청권 영향력은 여전

JP의 회고담처럼 자민련은 16대 대선 때 역할을 하지 못함으로써 소속 의원의 이탈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봐야 했다. 또 그것이 자민련의 몰락을 부채질했던 것처럼 국민중심당도 그러지 말라는 법이 없다. 최근 JP가 심 대표의 대선 출마를 훈수한 것도 이런 경험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정진석·류근찬 의원 등 현역들의 마음은 급하다. 내년 총선이 기다리고 있는데 대선에서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한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조급성은 한나라당 후보가 결정되는 8월 말 이후에는 배가될 수밖에 없다. 국민중심당을 떠나느냐, 연대하느냐, 대선 후보를 내느냐를 놓고 집요하게 심 대표를 채근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잖아도 이들은 한나라당에 호감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무렵이면 JP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현실정치를 떠난 지 3년여가 됐지만 심대평 대표를 비롯한 국민중심당에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할 여력은 있는 인물이다. 결정적 훈수를 할 수 있다는 말이다. 물론 현 상황에서 JP에게는 직접 충청권을 결집할 힘이 부치고 뜻도 없는 듯하다. 충청지역민도 그에 대한 향수는 있을지언정 그가 다시 나서서 세력을 모으는 것은 원치 않는 분위기다.

하지만 그는 충청권에서만큼은 상징성이 크다. 그 상징성이 존재하는 한 JP를 등에 업으려는 각 정파의 움직임도 긴박해질 것으로 보인다. JP의 침묵이 언제까지 유지될지 지켜볼 일이다.

김시헌 대전일보 정치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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