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흑인노예 무역선 '아미스타드'호 재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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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흑인 노예를 운반하던 선박 '아미스타드'호가 다시 만들어져 당시의 노예 무역 항로를 오가는 여정에 나섰다. 1839년 아미스타드호에서는 흑인들의 선상 반란이 일어나 200년에 걸친 미국의 노예제도에 마침표를 찍는 계기가 됐다. 21일 미국 코네티컷주의 뉴헤이븐을 출발한 프리덤 스쿠너 아미스타드호는 대서양을 건너 영국과 아프리카를 거쳐 귀환하는 1년4개월간의 2만2500㎞ 대장정에 올랐다.

이번 항해에서는 유럽과 아프리카에 이어 미국을 잇는 노예무역의 '트라이앵글'을 다시 찾는다. 당시의 유럽 노예 상인들은 아프리카에서 상품과 흑인을 교환한 뒤 이들을 미국에 팔고, 그 돈으로 다시 설탕과 담배.면화 등을 구입해 유럽으로 돌아갔다.

뉴헤이븐을 출발한 배는 캐나다의 노바스코샤주를 거쳐 8월 초 영국 런던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영국의 노예무역 폐지 200주년 기념 행사에 참석하고 리버풀로 향해 노예 박물관 개관식에도 참가할 예정이다.

이후 아미스타드호 노예들의 고향이었던 시에라리온과 노예무역의 주요 거점이 됐던 대서양 연안의 20여 개 항구를 들른다. 배는 카리브해를 지나 뉴욕으로 귀환해 노예제 폐지 법안 제정 200주년을 기린다.

이번 프로젝트의 책임자인 윌리엄 민터는 "미국 역사의 기념비적 사건인 아미스타드호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는 것은 매우 뜻 깊은 일"이라며 "요즘도 여전히 벌어지고 있는 인신매매와 아프리카의 기아 문제 등에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홍주희 기자

◆아미스타드호 사건=1839년 아프리카에서 납치한 흑인 53명을 실은 노예선 '아미스타드'에서 배고픔과 채찍질을 이기지 못한 노예들의 반란이 일어났다. 배를 장악했지만 항해 기술이 없었던 노예들은 미국 해군 함대에 붙잡혀 재판에 회부된다. 대통령을 지낸 존 퀸시 애덤스 변호사가 노예제도의 비윤리성과 인권 불가침을 주장했고, 법원은 이를 인정해 흑인들의 자유를 선언했다. 1997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이 이야기를 담은 영화 '아미스타드'를 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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