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책읽기] 여성해방 이후의 여성의 삶 왜 더 예속적이 된 줄 아십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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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여성은 해방되었는가? 1970년대부터 목소리를 높인 페미니스트들 덕분에 요즘 여성은 정말로 해방감을 만끽하며 사는가? 우리 사회를 대충 둘러보면 그렇게도 보이는 듯하다. 많은 여성이 집밖에서 활동하며, 세계 최저인 출생률에서 보듯이 여성이 출산의 고통에서 해방됐고, 황혼이혼이란 말이 낯설게 들리지 않는 세상이 됐으니 말이다. 그런데 프랑스에서 여성해방이 여성에게 안겨준 부정적 결과를 냉정하게 되짚어보면서 새로운 여성상을 모색하려는 의미 있는 책이 출간됐다. 엘리에트 아베카시스와 카롤린 봉그랑이 함께쓴 '보이지 않는 코르셋'(Le Corset Invisible, )이다. 요즘 여성이 과거의 여성보다 정말로 더 자유로울까? 두 저자는 이런 질문에 단호히 "아니다!"라고 말한다. 오히려 요즘 여성이 더 예속된 삶을 산다고 결론짓는다. 요즘 여성은 일을 해서 돈을 벌기 때문에 남자에게서 경제적으로 독립했고, 각자 형편에 맞게 출산 시기를 조절하는데 왜 더 예속된 삶을 산다는 것일까? 그 대답은 제목에 쓰인 '코르셋'이란 단어에서 찾아진다.

코르셋은 여성의 허리를 꼭 졸라매던 신체적 속박의 상징이었다. 요즘 여성은 페미니스트들의 투쟁 덕분에 물리적 코르셋을 벗어버렸지만 날씬하고 예뻐야 한다는 사회적 압박에 시달린다. 다이어트로 굶어야 하고, 그것도 모자라 주름살과의 전쟁을 벌인다. 여기에 '보이지 않는' 코르셋이 여성을 옭아맨다. 일을 한다는 이유로 사회생활을 하지만 좋은 엄마도 좋은 아내도 아니라는 끊임없는 메시지를 사회에서 받는다.

왜 이렇게 됐을까? 전부는 아니지만 페미니즘의 출발점에도 적잖은 원인이 있다. 페미니즘은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와 기존 질서에 반대해서, 또한 여성의 진정한 정체성을 부인하며 시작됐다. "여자와 남자는 비슷하다. 따라서 양성은 평등해야 한다"라며 여성적 가치를 남성화한 데 페미니즘의 오류가 있었다.

현대 여성은 자유롭고자 했지만 보이지 않는 코르셋에 옥죄어 산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현대판 노예다. 과거에 여성은 남성 전사의 휴식처였지만 요즘엔 여성이 전사가 됐다. 따라서 남성이 여성에게 바라는 것처럼, 남성도 여성에게 휴식처가 돼주길 기대하지만 남성은 이런 역할을 맡을 준비가 전혀 돼있지 않다. 또 여성이 아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가? 그렇게 말하면 비정상적인 여자로 취급 당한다. 아기가 없는 여자는 거의 죄인으로 취급한다. 그러나 출산은 남자와 고용주에게는 위협적인 것이다. 이렇게 여성은 사회적 모순에 갇혀 지낸다. 이처럼 여성은 겉보기에 자유로운 것 같지만 실제로는 걷지도 못하고 먹지도 못하며 늙지도 못한다. 여성의 육체와 정신을 파괴하는 보이지 않는 코르셋에 옥죄어 지낸다.

여성의 욕구와 열망은 남성의 그것과 다르다. 생물학적으로 여자는 여자로 태어나기 때문에 사회학적으로도 여자는 여자로 존재해야 마땅하다. 사회학적 평등을 이유로 생물학적 차이를 부인해서는 안 된다. 생물학적 차이를 인정하면서 사회학적 평등을 모색하는 새로운 길을 찾아가야 한다. 이제 여성은 살아남기 위해서, 여성으로 존재하기 위해서 남자가 필요하다. 보이지 않는 코르셋까지 벗어버리기 위해서 남자가 필요하다는 게 이 책의 메시지다. 여자가 여자답고, 남자가 남자다울 때 완전한 사회가 가능할 테니까.

강주헌<번역가>



강주헌씨는 …

한국외대 불어과를 졸업하고 프랑스에서 언어학을 공부했다. '문명의 붕괴', '오프라 윈프리, 위대한 인생', '촘스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 등을 번역했다. 영어 문법과 단어에 관한 어학책을 직접 쓰기도 했고 숨어있는 좋은 책을 발굴해서 소개하는 펍헙 에이전시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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