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있는아침] '뗏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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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뗏목'-신경림(1935~ )

뗏목은 강을 건널 때나 필요하지

강을 다 건너고도

뗏목을 떠메고 가는 미친놈이 어데 있느냐고

이것은 부처님의 말씀을 빌려

명진 스님이 하던 말이다

저녁 내내 장작불을 지펴 펄펄 끓는

방바닥에 배를 깔고 누운 절방

문을 열어 는개로 뽀얀 골짜기를 내려다보며

곰곰 생각해본다

혹 나 지금 뗏목으로 버려지지 않겠다고

밤낮으로 바둥거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혹 나 지금 뗏목으로 버려야 할 것들을 떠메고

뻘뻘 땀 흘리며 있는 것은 아닐까



강을 건네준 뗏목을 버려야 한다. 어떻게 생사를 함께한 것들을 버릴 수 있겠는가. 는개를 내다보며 쉬고 있는 저 깊은 희양산의 봉암사 저녁. 절방에서 생은 참 허허롭기만 했을 것 같다. 나는 지금 필요없는 짐을 짊어지고 있는 건 아닐까.

<고형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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