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열기와 독서 냉기|먹고 입고 마셔 없애는 국민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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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독서하기 가장 좋다는 가을에 책이 가장 안 팔리게 된지는 이미 오래고,「도서 전시회」를 열고 대학로에 책의 축제 판을 벌여도 얼어붙은 독서분위기는 녹을 줄 모른다. 출고되었던 책의 반품률이 20%에 육박하고, 서점 구경조차 못한 채 창고에서 파지상으로 직행하는 책이 40%대에 이른다는 것이 출판계의 자체 통계다.
얼마 전 신문지상에 발표된 한국인의 생활을 국제 비교한 한국은행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다른 나라에 비해 크게 잘하는 점은 잘 입고(의), 잘 먹고(식),잘 마신다(주)는 것이다. 즉, 돈과 시간을「입어 조지고, 먹어 조지고, 마셔 조지는」데 가장 많이 쓴다고 한다. 돈과 시간을 이 세가지에 가장 많이 쓰는 국민들이 책을 가장 안 읽는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책읽기」를 권하다가는 시대조류에 뒤떨어진 사람으로 취급받기 십상이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왜 계속해서 책읽기를 권장하지 않을 수 없는가. 맹자는 사람이 배불리 먹고, 따뜻한 옷을 입고, 편히 살게 되더라도 교육이 없으면 금수와 같다』고 했는데, 금수와 같아지는 상황을 미리 막아보려는 뜻에서만은 결코 아니다. 만약 국민 모두가 책읽기를 통하여 배움에, 지적 충실화에 힘쓰지 않는다면 머지않아 「잘 입고, 잘 먹고, 잘 마시는」일 자체도 할 수 없게 된다는 절박한 인식 때문이다.
지금 세계는 고도의 기술, 고도의 심화된 지식, 고급의 정보 없이는 치열한 국제 경제 전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는 그러한 상황에 와 있다. 선진국 국민들이 그것들을 갖기 위해서 열심히 책을 읽고, 생각하고, 토론하고 있는 동안에 우리들은 입고 먹고 마시는 것에 가장 많은 돈과 시간을 쓰고, 또 그것을 화제로 삼고 있으니 벌써 시작되고 있는 경제 전쟁에서 질 것이 뻔하지 않은가. 지고 나면 우리의 그러한 장기인들 어찌 계속 발휘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또 「책읽기」가 절박하게 필요한 이유는 결코 그것이 고상한 문화·인격·교양 등을 갖추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은 곧 국민 전체의「생산성」, 즉 경제 전쟁에서의 승패와 직결된 것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지 않는 정치가에겐 국민들을 올바로 이끌어갈 비전이 있을 수 없고, 책을 읽지 않는 관리들에겐 국정을 효율적으로 수행할 방안이 있을 수 없으며 한가 할 때에는 이권 챙기기에 골몰하고, 급한 일이 생기면 외국제도 모방에 급급하게 된다. 책을 읽지 않는 회사원이나 노동자들에게서는 기업의 발전을 위한 뛰어난 창의와 노력을 기대할 수 없다. 그들에게서 어찌 세계시장을 석권할만한 우수한 상품이 만들어지겠는가.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일수록 입고, 먹고, 마시는 일에 더 많은 돈과 시간이 필요하다. 따라서 더 많은 보수와 더 많은 소비시간을 요구하게 마련이다. 이것들은 그 속성상 인간의 정신을 궁핍하게 만든다. 그 정신과 마음이 궁핍한 국민들로 이루어전 나라가 부강한 나라가 될 수 없지 않은가.
지금 우리에게 가장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책 읽는 풍토의 조성이다. 만약 이에 대한 인식의 공감대만 형성된다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기업과 국민들이 해야 할 일들은 저절로 분명해질 것이다.【박기봉 <비봉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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