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교육 망치는 교육부총리 부끄러움도 없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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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김신일 교육부총리가 지난해 취임했을 때 많은 학부모는 한가닥 희망을 가졌다. 평생을 강단에 선 교육학자로서 줄곧 '자율과 경쟁'을 강조해 왔기 때문이다. 획일적인 평준화에 젖은 노무현 대통령에 맞춘 교육인적자원부의 '코드 정책'에 실망한 많은 국민은 김 부총리가 소신있게 우리 교육을 바꾸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그의 행적과 작금의 내신 혼란을 보면서 우리 교육의 앞날, 그리고 수많은 학생.학부모가 겪는 고통에 비애를 느낄 뿐이다.

취임 전만 해도 획일적인 평준화 정책을 비판하면서 우수 인재를 양성하는 수월성(秀越性) 교육, 학교 다양화, 대입 자율화, 교육 경쟁력 등을 강조했던 김 부총리다. 청문회에선 교육에 대한 국가주의적 통제를 줄이고, 평준화 틀 속에서 평준화.수월성 교육을 고르게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소신이 옳다면 정권 책임자를 설득하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란 말까지 했다.

취임 후 그의 태도는 완전히 달라졌다. 청와대가 외국어고를 비판하자 외고를 사교육 주범으로 몰아 외고 죽이기에 앞장섰다. 대학들이 3불(본고사.고교등급제.기여입학제 금지) 정책 폐지를 요구하자, 노 대통령의 뜻에 맞춰 전국을 돌면서 3불 정책 옹호 강연에 나섰다.

최근 대입 내신 혼란은 어떤가. 교육부는 대학들에 내신 실질반영비율을 50%까지 높이라고 강요하고 있다. 논술 가이드라인에 이어 내신 가이드라인까지 만들어 규제할 태세다. 고교.지역 간 학력 차가 큰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래서 대학들은 내신 비중이 너무 높아지면 우수한 학생이 상당한 불이익을 당한다며 교육부에 반대한다. 김 부총리도 이런 현실을 잘 알 것이다. 그런데도 청와대 뜻에 따라 대학들을 압박하고 있다.

서울대는 두 달 전 2008년 대입에선 내신 1~2등급에 같은 점수를 주겠다는 발표했다. 교육부도 그때는 문제없다고 했다. 그런데 노 대통령이 일부 사립대의 1~4등급 동점 처리 움직임에 대해 '내신 무력화'라고 비판하자, 교육부는 서울대에 대해 말을 바꿨다. 1~2등급에 점수 차이를 두라는 것이다. 서울대는 대입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을 이유로 거부하고 있지만, 교육부는 막무가내다. 학생들은 전혀 안중에 없다. 오직 노 대통령만 쳐다보고 있다. 김 부총리가 노 대통령을 설득하기는커녕 꼭두각시가 된 인상이다.

교육부는 서울대가 말을 듣지 않으면 교수 증원까지 막겠다고 한다. 툭하면 대학들에 행.재정 제재를 하겠다며 협박하더니, 이제는 손바닥 뒤엎듯이 바꾼 정책을 따르지 않는다고 대학 경쟁력까지 약화시키려고 한다. 이런 암적인 교육부라면 없애는 편이 낫다.

김 부총리는 그래도 자신은 소신을 지키고 있다고 말한다. 자신의 평생 업적을 부인하는 일이다. 말과 행동이 다른 나약한 지식인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는 듯하다. 노 정부의 역대 교육부총리 가운데는 대학 평준화를 위해 내신 비중을 대폭 확대하려는 청와대에 반대하다 경질된 사람도 있었다. 김 부총리는 누구를 위해 그 자리에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