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주먹」만큼 강인한 생활인|유명우씨<복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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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요행수보다 온몸을 내던져 필사적으로 벌어들인 탓일 것이다.
맞고 때리는 한치의 양보 없는 사투 끝에 상대보다 한대라도 더 많이 때려야 승리를 거머쥘 수 있는 비정한 게임, 프로복싱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복서 유명우(28·대원체육관)의 알뜰한 수입관리는 복싱 계에선 이미 오래 전부터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82년 프로에 첫 데뷔, 단돈 4천 원의 대전료를 시작으로 지난18일 일본의 이오카를 누르고 WBA주니어플라이급 챔피언타이틀을 재탈환하기까지 37전 동안 유가 벌어들인 파이트머니는 약 16억8천5백만원정도.
큰 부자가 됐을 것 같지만 이는 실상을 모르는 이야기다.
통상 대전료의 33%는 매니저 몫으로, 10%는 트레이너에게 떼어 주고 이외에도 세금과 한국프로복싱발전을 위해 내놓는 기금 얼마 등 이것저것을 다 빼고 나면 막상 선수에게 돌아가는 돈은 40여%에 불과하다.
따라서 유명우의 순 수입은 6억7천4백여 만원으로 이것이 10년 프로생활을 통해 얻은 액수
다.
상대주먹이 눈앞을 흐리고 피를 말리는 체중감량으로 혀가 바짝바짝 타 들어가는 고통을 경기 때마다 겪어야 하는 유의 씀씀이가 자연 짜질 수밖에 없었다.
유는 여느 챔피언들과는 다르게 타이틀 14차 방어 때(90년 1월)까지 지하철을 이용, 신림동 집에서 퇴계로 동아체육관(현재는 없어졌음)까지 훈련을 다닌 구두쇠다.
전철에서 만난 팬들의 사인요구 공세에 시달려 몸은 피곤해도 대전료 전액을 부친 유한식(68)씨에게 일임, 89년11월엔 연립주택에서 3층 양옥(당시 시가 1억5천만원)으로 이사했고 형들의 사업 밑천에도 일조 하는 우애를 보였다.
복서도 생활인으로 잘사는 것이 목표지 챔피언이 최종목표는 아니라는 것이 유의 지론으로 세계정상의 주먹만큼이나 단단한 생활인의 내 음이 배어 난다. <유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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