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격적 군사용어 삼가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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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언론매체 중 활자매체를 대표하는 신문의 역할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사실의 보도」「여론의 형성」, 그리고 이 두 가지에 가려 잘 거론되지 않는「적절하고 바른 용어의 선택 및 보급」이 있다.
그런데 중앙일보 16일자 9면의「안 뛰는 공 조직-민자 속앓이」제 하의 기사는 세 번째 용어선택 측면에 초점을 맞춰 보았을 때 너무 생각 없이 시중의 말을 활자화한 것으로 보인다.
민자당내의 선거대책 상황을 정리한 이 기사에서 각 지구당에 지급되는 자금을「실탄」, 그들의 활동을 각개전투, 지구당위원장을「소대장」으로 아주 자연스럽게 표현하고 있고 심지어 물량공세는「융단폭격」이라는 살벌한 용어까지 써 가며 표현했다. 지금까지 선거 때마다 그런 표현을 써 왔으므로 그대로 옮긴 것이 뭐가 문제냐고 할지도 모르겠지만「민주주의축제의 장」이 돼야 할 대 선을 앞두고 그 대책 현황을 마치대규모 전쟁처럼 표현한다면 이는 상대방을 선의의 경쟁상대가 아닌 무슨 수를 써서라도 쳐부수고 박살내야 할 적의 개념으로 인식시키는 역할을 신문이 앞장서서 주도하는 어처구니없는 꼴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말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만큼 우리 생활 속에 군사문화가 뿌리내린 것도 큰 문제인데 공격적인 군사용어는 최소한 신문에서만큼은 걸러져야 마땅한 것이다.
정치 판에서 실제로 이러한 용어가 난무하더라도 언론은 이를 지적하고 계도해야 한다. 그것이 삭막한 정치현실을 조금이나마 부드럽게 할 수 있는 언론의 중요한 사명이기 때문이다.
언론매체에서 과격한 군사용어를 사용하는 문제는 비단 이번에만 부각된 것도 아니고 중앙일보만의 불찰도 아니다. 비록 신문기사의 용어선택문제가 기사내용 자체보다는 중요성이 떨어진다 해도 우리모두의 올바른 국어문화와 정서함양 차원에서라도 기사의 내용 못지 않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신영일<서울 동대문구 제기1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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