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요리|강인희<전통음식 연구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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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작년 가을에 나는 전주에 사는 고당 여사님으로부터 동아를 기증 받은 바 있다. 동아는 박과(과)의 한해살이 덩굴 풀로, 한자로는 동 과로 적으므로 흔히 동 과로 불리기도 한다. 동아의 원산지는 본래 아열대라고 하나 예부 터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재배되어 국·김치·나물·누르미·선·적 등의 부식으로 조리되어 상위에 올려졌다.
또 정과로 만들어 간식으로 먹기도 하였다. 그런데 어찌된 셈인지 근자에는 동아를 구경하기가 어렵게 되었고 심지어 동아가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사람도 허다하다.
이러한 차에 동아를 얻게 된 나는 우선 동아를 번식시켜 볼 양으로 씨를 잘 발라내 보관해 두었다가 지난봄에 집 근처(경기도 이천)에다 심어 보았다.
동아가 본래 추운 지방에서는 잘 안 되는 식물이므로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는데 뜻밖에도 올 가을에 분이 하얗게 서린 살집 좋은 다섯 덩어리의 커다란 동아를 얻게 되었다.
나는 이 동아를 가지고 옛 문헌에 나와 있는 대로 동아요리를 재현해 보기로 하였다. 우선 정과 중에서 가장 맛이 좋다는 동아정과를 만들기 위해 동아를 썰어 껍질을 벗기고 조개가루에 버무린 다음 깨끗한 동이에 차곡차곡 넣어 두었다가 3일 후 동아를 꺼내 씻어 다시 뜨물에 담가 하루가 지난 뒤 깨끗이 씻은 다음 꿀을 부어 약한 불에서 조리니 그야말로 훌륭한 동아정과가 되었다.
그 맛은 사근사근하면서도 달짝지근한 것이 요즈음 흔히 먹는 어떤 서구식 간식에도 비할 바가 아니었다. 동아정과 외에 동아김치·동아나물 등도 문헌에 적힌대로 재현해 보았는데 아삭아삭한 그 맛이 몹시도 감미로웠다.
나는 올 가을에 재현해 본 이 동아요리들을 통해 옛 선인들의 지혜와 섬세함에 다시 한번 경탄했다. 그리고 이렇듯 맛있고 훌륭한 우리의 전통음식이 왜 사라졌는지 전통음식에 관여하는 한 사람으로서 커다란 책임감마저 느꼈다 .
서양의 외식산업에 눌려 있는 우리의 전통음식을 되살릴 길은 없는지. 우리 모두의 숙제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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