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엇갈린 “파벌정치 종식”(일 정치개혁 될까: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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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돈 없는 야당들 소선거구제 반대/정치자금법 등 부분보완 그칠듯
일본 자민당 정치개혁본부는 지금 빗발치는 여론의 비난속에서 정치개혁 방안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소선거구제 도입,정당에 정치자금을 지원하는 정당교부금제도 창설,정치헌금의 공개기준 인하,정치자금 규정법 위반에 대한 처벌강화 등이 검토되고 있다.
민간정치개혁추진협의회 등 정치개혁 그룹들은 더욱 획기적인 제도개선안을 내놓고 있다. 정치자금 수지보고서에 관해 준사법적 기능을 갖는 정치자금위원회 설치 ▲소선거구제 도입 ▲기업·단체의 정치헌금을 정당으로 일원화 ▲비서나 친척이 불법정치 자금과 관련됐을때 해당의원의 공민권 제한 등이 골자다.
이같은 제도개선 움직임과 별도로 정계개편을 주장하는 정치세력도 있다. 오자와 이치로(소택일랑) 전자민당 간사장은 일본의 정치가 이대론 안된다는 정계개편론자다. 그는 자파의원을 2백여명 정도 늘린뒤 자민당과 사회당을 해산,헤쳐모여 한 뒤 소선거구제로 정권교체가 가능한 2대정당 체제로 가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사민련의 에다 사쓰키(강전오월)대표는 시리우스(천랑성)라는 정책집단을 만들어 노동계를 포함,현재의 사회당을 해체하고 자민당의 참신한 의원과 함께 새 당을 만들자고 나서고 있다.
정계개편이나 파벌해산 등 주장이 호응을 얻고 있는 것은 파벌정치가 자민당 금권정치와 부패의 온상이기 때문이다. 정치신인의 발굴,정치자금 조달,정부·국회·당의 자리배분,진정안건 처리 등이 모두 파벌을 통해 이뤄진다. 정부의 기본정책 중심이동도 파벌의 균형과 대립에 의해 실현돼왔다. 파벌은 만능이나 다름없다.
파벌을 움직이는 것은 바로 돈이다. 록히드 스캔들,리크루트사건,철골가공회사 교와(공화)사건,도쿄사가와 규빈(동경좌천급편)사건 등이 모두 파벌을 위한 정치자금 조달과 관련된 스캔들이다.
파벌소속 의원들은 보스로부터 자금과 조직의 지원을 받는 대신 그에게 충성을 바친다. 누가 파벌 지도자가 돼 총리가 되느냐는 것은 정치자금을 누가 가장 잘 조달하느냐에 달려있다. 미국처럼 참신한 사람이 나와 정책대결로 후보자가 되고 정권을 잡는 것은 일본에선 불가능하다. 과거 깨끗한 정치를 시도하기 위해 여러차례 정치개혁이 시도됐으나 실패한 것도 파벌의 이해를 무시한채 개혁을 시도한 때문이다.
지난 74년 다나카 가쿠에이(전중각영)총리가 금맥문제로 물러나고 이어 등장한 미키 다케오(삼목무부)총리,78년 미국 맥도넬 더글러스사와 그라먼사가 자민당의 마쓰노 라이조(송야뇌삼)의원에 대한 5억엔 지급사건때 오히라(대평)내각이 각각 정치개혁 입법을 시도했으나 당내 반대로 모두 실패했다. 파벌이 존속하는 한 돈이 드는데 파벌을 그대로 두고 돈이 들어오는 길만 막으려 한 것이 실패이유였다.
88년 리크루트사건이 터진뒤 다케시타 노보루(죽하등) 후임으로 총리가 된 가이후 도시키(해부준수)도 개혁을 시도하다 물러나야 했다.
그는 국민적 인기를 바탕으로 정치자금 규정법 개정,소선거구제 등 선거제도 개정,정당 조성법 개정 등 3대 개혁법안을 입법화 하려 했으나 자민당은 물론 야당까지 반대해 실패했다.
이처럼 파벌로 인한 끊임없는 스캔들 때마다 거론되던 정치개혁 관련 입법은 정파간 이해관계가 일치하지 않아 결국 모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나카소네 야스히로(중증근강홍)전총리는 지난달 28일 한 정치집회에서 소선거구제와 관련,『선거제도는 야당과의 관계도 있어 쉽지 않다. 이를 당장 실현할 수 있다고 외친다면 이는 위선』이라고 냉정하게 말했다.
어느 나라나 의원들의 최대 관심은 자신이 다음 선거에서 당선되느냐다. 그러나 소선거구제는 2등이 허용되지 않는다. 죽기살기로 싸워야 한다. 조직과 자금에서 달리는 야당은 자민당 의원들보다 더 소선거구제를 반대한다. 만일 소선거구제가 실현된다면 자민당은 더욱 거대해지고 사회당은 의석수가 줄며 공명·민사당 등 군소정당은 설자리가 없어질 것이라는 조사결과가 이를 말해준다.
정치자금 관련법도 의원들이 쉽사리 스스로의 목을 죄려 하지 않아 쉽게 성사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이번의 정치개혁 열풍도 결국 근본적 개혁보다는 정치자금 규정법의 처벌규정 강화 등 부분적인 보완에서 그칠 것이란 것이 일반적 예상이다.<동경=이석구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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