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분아, 오빠구실 못한 것 용서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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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오후 2시30분 서울 용산구 국방회관 1층 연회실. 북한을 탈출해 지난 24일 귀환한 국군포로 전용일(72)씨와 가족들이 처음 대면하는 순간 잠시 침묵이 흐르다 이내 서로 부둥켜안은 채 이름만 불렀다.

전씨는 한동안 눈물만 흘리다 막내인 여동생 전분이(57·대구시 달서구 진천동)씨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네가 끝분이야. 끝분아, 오빠를 용서해라. 오빠 구실 못했다"며 오열했다.

전씨는 분이씨가 "TV에서 나온 얼굴보다 좋다. 얼굴이 건강하게 보인다"고 하자 "이제 마음 푹 놓아라. 오빠가 업어주고 안아줄게. 이 오빠는 나약한 놈이 아니야"라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전씨는 이날 상봉한 동생 2명은 쉽게 기억했으나 군에 입대했던 1951년 시집간 누나 전영목(78·대구시 달서구 진천동)씨는 잘 알아보지 못하다가 분이씨가 "오빠, 영목이 누나 모르겠어. 오빠가 군대갈 때 시집간 누나야"라고 설명하자 그제서야 "맞아, 날 장가보내준다고 그랬지. 누나, 누나…"라며 목놓아 울었다.

가족들은 전씨를 의자에 앉힌 뒤 큰절을 올린 데 이어 동석한 분이씨의 남편과 동생 수일(65·경북 영천시)씨의 부인·아들을 소개했다.

전씨의 누나 영목씨와 남동생 수일씨 부부와 아들, 여동생 분이씨 부부 등 6명은 이날 오전 정부 관계자에게서 면회가 가능하다는 전화연락을 받고 비행기 편으로 상경해 눈물의 상봉을 했다.

검정 모자와 반코트 차림의 전씨는 이날 국방회관에 도착하자마자 타고온 승용차에서 내려 혼자 면회장으로 빠른 걸음으로 걸어갈 정도로 건강한 모습이었다.
이철희 기자ch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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