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장사 백승일 가난 씻어 샅바 힘 "불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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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천부적 씨름소질을 갖고 있으면서도 가난과 가정불화로 방황해 온 고교생 장사 백승일(16·순천상고)이 오는 12월1일 창단되는 청구씨름단에 안착, 제2의 씨름인생을 가꿔 나가고 있다.
백승일과 어머니 안순자(46)씨, 그리고 누나(22), 형(20)등 일가족 4명은 지난3일 그동안 조상 대대로 살아온 순천 땅을 떠나 청구씨름단이 대구에 마련해 준 아파트(황금동 경남타운아파트·30평)로 이사, 집안정리를 마치고 새롭게 펼쳐질「타향살이」에 설레고 있다.
타고난 힘과 유연성을 바탕으로 지난해 전국중등부(순천 이수중 3)씨름 5관 왕에 오르며 돌풍을 일으킨 백승일은 올 봄 순천상고에 입학, 1년 생답지 않은 발군의 기량으로 김경수(동양공고), 신봉민(부산금성고)등 간판 급 선배들과 어깨를 나란치 해 온 미래의 천하장사 1순위.
그동안 하루 세끼조차 때우기 힘든 가난과 아버지가 없는 외로움(?)을 오로지 훈련 하나로 버텨 온 백승일은 학업이냐, 가계에 보탬을 줄 수 있는 프로팀 진출이냐를 놓고 겪어 온 가족들간의 갈등을 말끔치 해소하고 이제 프로무대에서 오로지 정상에 오르기 위해 샅바를 움켜쥐었다.
돌이켜보면 괴로움과 고통의 나날이었다. 원래 백승일은 육상 단거리(1백·2백m 선수출신. 순천 성동 국교 시절 키도 보통선수보다 큰데다 몸도 날씬해 트랙선수로는 제격이었던 것. 그러나 몸이 커지던 3학년 무렵 학교 씨름선생님의 권유로 씨름으로 방향을 틀었다. 국교시절에는 기본 기 육성에 몰두했고 이수 중에 입학해서는 키가 지금의 1m85cm(1백30kg)로 커진데다 힘도 붙어 드는 씨름엔 당할 선수가 없는 전국랭킹 1위로 군림했다.
그러나 소년장사 백승일은 고된 훈련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허전한 마음을 채울 길 없었다. 국교3년 때 어머니와 멀어진 아버지는 집에 안 계시고 이로 인해 가정형편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어려워져 밥을 많이 먹는 게 어머니에게 죄를 짓는 것처럼 죄송한 마음이 들 정도였다.
어머니 안씨는 노점상 등 돈벌이가 되는 일이라면 닥치는 대로 나서 가계를 꾸려 나갔으나 대학에 다니는 누나(순천대4)의 학비 등으로 어려움이 더욱 심했다. 어머니는『힘을 쓰려면 고기를 많이 먹여야 하는데 좋아하는 고기를 마음껏 먹이지 못해 마음이 아리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러던 차에 신생팀 청구의 창단은 가뭄의 단비였다. 일부의 반대도 있었지만 도대체 씨름으로 성장하고, 무엇보다도 가정형편이 펴는데 누가 무슨 논리로 막겠느냐는 게 온 가족의 의견이었다.
청구에서도 비록 프로팀이긴 하지만 백승일의 집안형편을 감안, 숙소 바로 앞에 아파트를 구입해 백의 가족을 이사시키는 한편 고교를 나와 놀고 있던 형과 이번에 대학을 졸업하는 누나 등 일가족을 자사에 취업시키는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1억5천만원이라는 적지 않은 돈이 계약금(연봉제외)으로 쥐어졌다.
어머니 안씨는 『먹고살기 위해 고향을 떠난다는 게 제일 큰 걱정』이었으나『승일이의 씨름장래를 위해서는 어디인들 못 가겠느냐 며 모성을 나타냈다.
한편 청구씨름단의 조특래 단장은『백선수가 씨름을 하면서도 고교를 졸업할 수 있도록 방안을 강구 중』이라고 밝혔고 김학웅 감독은 2∼3년만 다듬으면 천하장사 타이틀을 충분히 따낼 수 있을 것이라고 낙관, 백을 독려하고 있다.
요즘 백승일은 모처럼 웃음을 되찾았다. 새로 생긴 아파트를 괜히 둘러보기만 해도 마음이 넉넉해졌으며, 무엇보다도 어머니와 누나 등 가족들이 편안히 쉴 공간이 생겨 가슴이 뿌듯하다는 얘기다.
백승일은 내년 설날의 천하장사대회에서는 우선8강에라도 들어 도와준 주변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도록 뼈를 깎는 훈련을 하리라고 다짐하고 있다. 【대구=신동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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