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양길 방짜 놋 수저 맥 잇는다|강릉 김영락·김종걸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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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우리들의 밥상에서 사라 진지 오래인 방짜 놋 수저의 맥을 잇는 고집스런 장인이 있다.
강릉시 입암동에 사는「윗 대장」김영락씨(67).
김씨는 조상의 숨결과 슬기가 담긴 방짜 놋 수저를 재현하기 위해 조수 격인「아랫 대장」김종걸씨(68·동해시 북삼동)와 자신의 40여 평 남짓한 한옥 한 귀퉁이에 마련한 놋 간장(놋쇠로 그릇을 만드는 공장: 놋 갓 점)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고생하면서 배운 우리의 전통기법의 맥이 끊어질지 모른다는 절박한 심정에서 놋쇠를 만지게 됐습니다.』
김씨의 방짜 놋 수저는 시중에서 간혹 보이는 흐릿한 때깔의 놋 수저와 달리 윤이 반짝반짝 흐르는 등 한눈에 보아도 기품이 있어 보이는 황금색이다.
『불에 너무 달구면 금방 헤 지고 너무 식히면 깨져 온도 맞추기가 가장 중요하며 혼합비율도 구리 한근(6백g·16냥)에 상납 넉냥 닷돈 비율로 정확해야 됩니다.』
일단 혼합한 놋쇠를 숯불에 적당히 달궈 머루 돌에 올려놓고 앞뒤를 돌려 가며 윗 대장과 아랫 대장이 번갈아 망치로 두드려 숟가락 형태를 만든 후 이곳에다 윗 대장이 쇠칼로 표면을 깎아낸 뒤 끝 부분에 섬세한 조각을 새겨 완벽한 숟가락을 만들어 낸다. 김씨의 대표적 작품은 어려서부터 불심(불심)을 심어 주기 위해 수저 끝 부분을「ㄹ」자 모양으로 구부려 연꽃모양을 조각한 어린이용수저와 삼강오륜을 상징하는 대나무마디 모양의 수저로 국내에서 유일하게 김씨만 재현해 낼 수 있는 전통기법이다.
고희를 바라보는 김씨가 오랜 기간동안 손을 놓았던 방짜 놋 수저 만드는 일을 다시 시작한 것은 지난 87년.
경북 봉화군 신흥리에서 놋 간장을 운영했던 부친 김치근씨(작고)로부터 어릴 때부터 기술을 배운 김씨는 해방이후 50년대 말까지 전국을 오가며 놋 간장을 운영해 오다 스테인리스제품이 들어오면서 사양길에 접어들자 한때 전자제품대리점을 운영하는 등 외도의 길을 걷게 된다.
그러나 나이가 점점 들어가면서 방짜 놋 수저의 맥을 이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87년 생업을 포기하고 자신의 한옥 옆 켠에 판자로 놋 간장을 차려 놓고 5년째 마지막 정열을 불태우고 있는 것이다. 【강릉=홍창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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