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합의」에 거부권 가능성/미­EC 농산물협상 미·불 표정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농민의견 수용이 관건/유럽분열 부채질 우려
20일 타결된 합의내용에 미국에 이은 세계 제2의 농산물 수출국인 프랑스가 강력히 반발하고 있어 비록 무역전쟁의 급한 불은 껐지만 여전히 분쟁의 불씨는 남아있다. 만일 프랑스가 이번 합의를 거부하는 쪽으로 공식입장을 정하고 나올 경우 유럽의 분열위기 가속화와 함께 미·불간의 무역분쟁이 본격화 하는 새로운 양상이 전개될 가능성도 있다.
양측간의 합의사실이 알려진 직후 프랑스의 장 피에르 스와송농업장관은 『개인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합의』라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내주초 의회와의 협의를 거쳐 이번 합의에 대한 프랑스정부의 공식입장을 정하게 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내년 3월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의회가 이 문제에 대해 어떤 입장을 보이게 될지는 뻔한 노릇인만큼 프랑스정부가 계획하고 있는 의회와의 협의는 기존의 강경입장을 공식화 하기 위한 요식절차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그러나 프랑수아 미테랑대통령이 프랑스 농민들이 요구하고 있는대로 과연 EC 최고의사 결정기관인 수뇌회의에서 이번 합의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게 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만일 프랑스가 거부권을 행사하게 될 경우 EC통합은 결정적인 위기를 맞지 않을 수 없을 전망이다. 현재 EC수뇌회의 의장을 맡고 있는 영국의 존 메이저총리는 『프랑스의 거부권 행사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미리 못박고 있다.
이번 합의에 반대하면서 프랑스는 이번 합의가 지난 5월에 확정된 EC의 공동농업정책(CAP) 개혁에 따른 양보범위를 넘어서기 때문이라는 점을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번 합의로 EC가 CAP개혁에 허용된 범위 이상으로 농산물 생산량을 줄일 수 밖에 없다는 프랑스의 분석이 입증될 경우 프랑스는 이번 미국과의 합의는 일단 인정하되 CAP를 재개혁 해야 한다는 주장을 들고 나올 수도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즉 이번에는 대미 양보로 예상되는 농민들의 피해를 보상해주는 방향으로 CAP를 다시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일단 농민들을 무마하면서 총선이 있는 내년 3월까지 시간을 벌자는 계산이라는 지적이다. 프랑스가 여전히 강경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배경에는 나름대로 이같은 계산이 있다.<파리=배명복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