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총련 간판만 남을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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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일본에서 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에 627억 엔의 부실채권을 갚으라는 판결이 내려졌다.

도쿄지방법원은 18일 일본의 부실채권 정리기관인 정리회수기구가 조총련에 제기한 부실채권 지급 청구소송에서 "재일 조선인계 조긴(朝銀) 신용금고가 파산하면서 정리회수기구가 떠안았던 부실채권 중 627억 엔은 조총련에 대한 융자였음이 명백하므로 이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이와 함께 최고재판소(대법원) 판결 전에 조총련 재산에 대한 압류.경매를 가능하게 '가집행'도 인정했다.

이에 따라 정리회수기구의 조총련에 대한 채권 회수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요미우리(讀賣)신문은 "이번 판결로 조총련은 시설 상당수를 추가 압류당해 활동 거점을 잃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조총련 측은 이번 소송에서 채무가 있었다는 사실은 인정했다. 하지만 "(정리회수기구가) 채권가치보다 현저하게 낮은 가격으로 채권을 인수했으면서도 액면가대로 반환을 청구하는 것은 공적 성격을 지닌 기구의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조총련으로부터 본부 시설을 빼앗아 해산시키려는 정치적 의도"라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관심의 초점은 정리회수기구가 1955년 설립된 조총련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도쿄 중앙본부 건물에 대한 압류에 나설 것인지에 쏠리고 있다.

조총련 중앙본부의 토지.건물이 '조선중앙회관 관리회'로 등기돼 있어 패소한 피고와 명의가 다르기 때문에 일부에선 '가집행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현재로선 "피고와 등기 명의자가 사실상 동일 기관임이 명백할 경우 압류가 가능하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실제 조총련은 "'조선중앙회관 관리회'와 '조총련'은 일체(一體)"라고 인정해 왔다.

조총련이 이달 초 공안조사청 전 장관이 대표로 있는 투자회사에 중앙본부의 토지.건물을 35억 엔에 팔기로 하고 소유권 이전을 서둘러 마친 것도 재판에 미리 대비한 측면이 강하다.

이번 사태의 불똥이 더욱 번질 가능성도 있다. 도쿄지검 특수부가 "대금이 건네지기 전에 등기를 마치는 등 강제집행을 피하기 위한 '위장거래'의 의혹이 있다"며 중앙본부를 사들이려 했던 오가타 시게타케(緖方重威) 전 공안조사청 장관과 조총련 대리인인 쓰치야 고켄(土屋公獻) 전 일본변호사연맹 회장의 자택을 압수 수색하는 등 수사를 확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가타 전 장관은 18일 기자회견을 열고 "매수 방침을 백지화하고 해당 부동산 등기도 원상 복구하겠다"고 발을 뺐지만, 매각 과정에 깊숙이 개입한 것으로 알려진 조총련 최고 실력자 허종만 수석부의장에게로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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